항목 ID | GC0890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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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初期國家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이종록 |
[정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 초기 국가가 존재하였던 시기의 경기도 남양주 일대의 역사.
[개설]
초기 국가 시대는 한국사에서 고구려·백제·신라 3국이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 초기 국가(初期 國家) 단계에 머문 국가들이 병존하던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사의 시대 구분에서 삼국 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고대 국가’로서 체제를 정비한 4세기 이후를 칭하지만, 그 이전 시기의 단계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고고학계의 경우 이 시기를 ‘원삼국 시대’라고 칭하며, 1) 청동기의 소멸, 2) 철 생산의 성행, 3) 지석묘의 소멸 등을 특징으로 삼는다. 그 하한 연대는 기원 전후 시기에서부터 3~4세기까지에 이르는 시기이다. 반면 문헌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에서는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 대신 ‘삼한 시대’, ‘삼국 시대 전기’ 등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며, ‘초기 국가 시대’ 또한 문헌사학계에서 고고학계의 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초기 국가’라는 용어는 율령제를 갖춘 ‘고대 국가’ 이전의 원시적인 단계의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1970년대부터 언급되었다. 초기 국가는 같은 시기 ‘국가 형성론’에 대한 논의에서 성곽이 있는 읍(邑)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소국을 의미하는 ‘성읍 국가’ 내지 ‘도시 국가’와 같은 용어들과 더불어, ‘군장 사회’나 ‘부족 국가’ 등의 원시적인 국가 형태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서 초기 국가 시대는 삼한의 소국들이 병존하던 시기에 해당하며, 연구자에 따라서는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마한의 50여 개 소국들 중 하나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초기 국가’를 고대 국가 이전 모든 원시적 단계의 국가로 이해할 경우 성읍 국가와 같은 용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문제점이나, 국가의 단계로 보기 힘든 군장 사회와도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초기 국가는 내적으로는 율령제 혹은 관료제와 같은 중앙 집권 체제가 완성되지 못했으나, 외적으로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지역 수장을 통해 주변의 복합 사회에 대해 분층적으로 지배가 이루어진 국가 형태로 구분하는 단계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는 H. 클라센(Henri Classen)에 따르면 기존의 군장 사회[chiefdom]와 같은 복합 사회 조직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을 거쳐 형성된 단계로서, 이후 한국사에서 ‘고대 국가’에 해당하는 성숙 국가[mature state]가 형성된 시기의 이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초기 국가 시대의 남양주]
초기 국가 시대는 일반적으로 고조선과 고조선의 멸망을 전후하여 나타나는 여러 국가, 곧 부여·삼한 등과 초기 고구려의 여러 국가들이 병존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은 위치상 삼한 중 하나인 마한(馬韓)에 속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 한(韓) 조에 따르면 마한은 50여 개의 소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 있었던 소국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이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진건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의 골의노현(骨衣奴縣)과 음운이 유사함에 주목하여 마한의 소국 중 고리국(古離國)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마한을 포함하여 초기 국가 시대의 국가의 정치적 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마한은 금강 유역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목지국(目支國)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소국과 일정한 연맹 관계를 맺고 있었거나, 혹은 더 나아가 공납을 받으며 일정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리국을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의 마한 소국으로 본다면 목지국이나 주변의 더욱 강성했던 마한 소국에게 복속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의 마한 소국이 주변의 다른 소국들에 대하여 연맹 관계를 가지고 있었거나, 중심 지역으로서 초기국가의 수준에 도달하여 주변 지역으로부터 공납을 받았던 관계가 성립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의 마한 소국의 정치적 수준이나 구조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정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후 마한의 소국들은 목지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중심 국가가 된 백제에게 점차 복속되었고, 고리국 혹은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 형성된 소국 또한 백제의 영향력 하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경우 초기국가 시대 백제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과 인접한 지역이며, 한강을 통한 수운 교통로가 이어지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이 백제의 영향력 하에 들어갔던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보면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의 정치 집단이 백제의 건국 과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향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