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조경(趙絅)[1586~1669]은 포천 지역 한양 조씨(漢陽趙氏) 집성촌을 구체화한 인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복구하지 못한 사당을 선영 아래에 건립하여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또한 그 옆으로 관거재(寬居齋)란 가숙(家塾)을 지어 자제를 교육하는 장소로 삼았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 주봉(柱峯...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회여(晦汝), 호는 송천(松泉). 우의정 조연(趙涓)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구(趙緱)이다. 조경(趙絅)의 조카이다. 조위명(趙威明)[1640~1685]은 7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작은아버지 조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세자익위사 부수(世子翊衛司副率)가 되었다가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한양. 자는 경소(敬所). 우의정 한평부원군(漢平府院君) 조연(趙涓)의 6세손이고, 아들은 용주(龍洲) 조경(趙絅)이다. 조익남(趙翼男)[1564~?]은 포천현 북쪽 10리 떨어진 가차리(加次里)[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살았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이 50세에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3년을 시묘하면서 소식(疏食)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