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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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供給源,石炭産業-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재홍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9년 - 삼척개발주식회사 북삼화학공장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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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생산기지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71-1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은 국내 최대의 석탄생산지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원이었으며,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도시로 도약하고 있음.
[개설]
강원도 삼척 지역은 국내 최대의 석탄 생산지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원이었다. 석탄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에너지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석탄은 식물이 말라 죽은 후 완전히 물에 잠겨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되고 부식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지압과 지열을 받아 생성된다. 석탄 중 무연탄은 탄화가 가장 잘 되어 불꽃이 짧고 연기가 나지 않으며, 화력이 강하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연소하는 석탄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삼척은 우리나라 최고의 무연탄 생산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석탄의 주 탄종인 무연탄의 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은 삼척 탄전이다. 국내 탄전별 부존 상황을 보면 삼척 탄전이 가장 많은 광량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탄전 중 가장 양호하였다. 문경 탄전, 강릉 탄전 등은 가체율 면에서 비교적 나은 편이며, 정선 탄전은 면적이 넓고 광량은 삼척 탄전 다음으로 많지만 여건이 열악하여 개발이 활성화하지 못하였다. 또한 삼척 탄전이 탄질도 가장 좋을 뿐만 아니라 매장량의 경우 삼척 탄전이 5억 6558만t으로 총매장량의 39%를 점하고 있다. 삼척 탄전은 총 매장량 가운데 51%인 3억t이 개발 가능하여 다른 지역의 20%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일제의 에너지 수탈정책]
삼척 지역의 석탄 개발은 일제의 자원 수탈정책에 의해 전략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제가 수탈한 광물 가운데 무연탄은 해군 함정의 전략적 연료와 제강용 환원제 등으로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었다.
1936년에 남한 지역 최대 탄전이라 할 수 있는 삼척 지역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다. 일제 군부는 조선총독부가 삼척 탄전을 개발하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일본의 재벌을 동원하여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일본은 삼척 탄광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연료로 하여 삼척화력발전소를 세우고, 전기를 이용한 석회질소 비료공장인 북삼화학과 양양철광에서 생산된 철광석으로 철을 생산하는 제철공장, 그리고 삼척 지역의 풍부한 석회석을 바탕으로 하는 시멘트공장을 가동하고자 하였다.
삼척 지역은 산맥에 둘러싸여 채탄 개발과 수송이 어려운 산악지대였다. 그러나 석탄이 필요한 일본으로서는 동해안까지만 나오면 바다를 통해 운송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은 삼척 탄광의 개발과 묵호항의 개항, 도계-묵호항 구간의 철도 개설을 위해 일본의 철도기술, 항만기술, 탄광기술을 총동원하였다. 아울러 탄광이민정책을 통해 식민지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삼척 탄광은 국내 최대의 생산량과 좋은 탄질 때문에 개광하자마자 남한의 최대 탄전지대로 명성을 굳혔다. 삼척 탄광에서 생산된 석탄은 ‘삼척탄’이라는 이름으로 절반 이상은 묵호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나머지는 북삼화학공업단지와 인근 지역 업체의 공업원료 및 동력원으로 사용되었다. 1936년에 삼척 탄광이 개발되면서 1939년에 삼척개발주식회사 북삼화학공장이 준공되었다. 1942년에 삼척읍 사직리에 오노다시멘트주식회사 삼척공장이 완공되고, 1943년 삼화제철소가 설립되어 상호 연계하면서 삼척 지역의 전반적인 공업 발전을 가져왔다.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
해방 이후 삼척 지역에서 생산된 석탄은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삼척에서 생산된 석탄이 화력발전소에서 공급되어 전력공급이 원활해졌고, 이는 자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초 에너지원으로서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탄광지대의 검은 강물이 한강으로 흘러들어 오염시킨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이룬 한국 산업발전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해방과 함께 남북이 분단되면서 삼척 탄광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되었던 주요 석탄 탄광의 대부분이 북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남한에서 무연탄을 생산할 수 있는 주요 탄광은 삼척 탄광을 비롯해 11개에 불과하였다. 국내 석탄 생산의 80퍼센트를 북한이 담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분단은 남한 석탄 에너지 자원의 심각한 부족 현상을 가져왔다.
1948년 5월 북한의 전력공급 중단으로 남한의 에너지원이 절대 부족 현상을 빚으면서 남한에서는 탄광 개발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1951년에는 전쟁 중에도 새로운 광업법이 제정되어 공포되면서 탄광 개발이 이어졌다. 험악하고 황량한 산골짜기에 위치한 삼척 탄광 지역이 남한 지역 최대 탄전으로 급부상하면서 삼척 탄광 지역에는 석탄 노다지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너도나도 노다지의 꿈을 가지고 일명 ‘쫄딱 구덩이’라고 불리는 소규모 탄광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삼척 탄광 지역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해방 이후 일본으로부터 귀속된 탄광을 중앙정부에서 직영하였던 것을 1950년 11월 대한석탄공사가 발족하면서 국영 기업체로 개편 운영하였다. 대한석탄공사는 설립 당시 정부가 지정하는 장성, 도계 등에 탄광을 개발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선 석탄 배합회사의 석탄 수급업무를 흡수하고 운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석탄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교육 훈련 및 기타 정부의 위탁업무에 이르기까지 사업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한편 전국 각지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철도도 개통되었다. 일제의 삼척탄광개발은 석탄 수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도계, 장성에서 묵호항까지만 철도가 개설되어 있었다. 삼척에서 서울이나 부산 방면으로의 교통망은 모두 막혀 있었다. 1956년 철암에서 영주까지 철도가 개통되어 영동선 철도가 중앙선과 연결되었고, 1962년에는 묵호에서 강릉경포대를 연결한 철도와 백산역에서 태백황지역까지 철도가 개통되었다. 1970년에는 태백 황지에서 정선, 영월, 제천을 연결하는 태백선이 개통됨으로써 삼척 지역에서 생산된 무연탄은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 되어 전국으로 공급되었다.
[탄광촌의 삶과 문화]
삼척 탄광 지역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이 좁아 손바닥 하나면 하늘을 가린다.’고 하기도 하고, ‘앞 뒷산에 줄을 걸어 빨랫줄로 쓴다.’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검은 노다지를 따라 사람들이 모이면서 돈도 함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삼척 탄광 지역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광부들의 수입도 높아 ‘탄광노동자 신분증만 뒷주머니에 차면 농촌처녀들이 서로 시집오겠다고 줄을 섰다.’는 말까지 유행하였다.
삼척 탄광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검은 주춧돌인 동시에 에너지 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다. 석탄은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되면서 첫 번째 에너지 위기와 1973년 중동 전쟁으로 인한 제1차 석유 파동, 그리고 1978년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직면한 에너지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서민들의 값싼 에너지원으로 국민들에게 연탄이 공급되자 자연스럽게 산림녹화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부족한 전력을 화력 발전으로 해결함으로써 초기 산업화를 주도하며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석탄 사업은 사양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양화의 원인은 크게 국내외적인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내적인 요인으로 1966년의 극심한 연탄 파동 이후 정부는 에너지의 소비 패턴을 연탄에서 석유로 옮겨가는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또한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가스와 같은 청정연료가 공급되면서 연탄의 수요는 더욱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석탄을 생산하는 탄광은 채굴장이 점점 더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감으로써 생산 원가가 상승하였다. 반면 국외적인 요인으로 석유 파동 이후 국제 원유 가격이 하락·안정화되면서 석탄의 경쟁력이 상실되었다. 결국 1980년대 후반 ‘석탄 산업 합리화’라는 태풍이 석탄 산업을 몰락시키면서 삼척의 역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1987년 10월 정부는 석탄 합리화 대책을 수리하고 1988년부터 개발 한계 탄광을 통폐합한다고 발표함으로서 석탄 산업의 구조 조정을 선언했다. 이어 1988년 12월 석탄 산업법을 개정하여 석탄 광업의 폐광 정리를 명문화하였다. 폐광지원대상 광산 기준 설정과 광업권자 및 조광권자에 대한 폐광대책의 집급 등을 규정함으로써 비경제 탄광의 자율적인 폐광을 유도하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석탄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들이 문을 닫자 탄광 지역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경제 위축으로 광산도시는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삼척 도계미인폭포에서 발원하여 삼척을 관통하는 오십 굽이의 오십천 강물이 다시 맑아졌다. 역설적으로 오십천 강물이 맑아지는 만큼 탄광지대의 경기는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탄광에서 이른바 ‘막장 인생’을 살았던 광부들은 진폐라는 직업병을 안고 또 다른 막장을 찾아 하나둘씩 떠나갔다. 팔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팔도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북적거리던 탄광촌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이 떠나간 오십천에는 광산 개발로 검게 오염되어 떠나갔던 물고기만 다시 돌아오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도시로 도약]
삼척은 신재생에너지 도시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삼척시는 2008년 2조 7000억 원 규모의 LNG 생산기지 사업을 유치하고, 그해 5조 9000억 원을 들여 5000㎿급 발전소 7기를 건설하는 종합발전단지 사업 유치에도 성공하면서 에너지도시로의 도약을 시작하였다. 삼척시 원덕읍호산항 일대에 LNG 생산기지가 건설되었으며, 호산항 북쪽은 한국남부발전 삼척그린파워건설본부가 조성하는 종합발전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삼척시는 2011년 8월 종합발전단지 안에 1조 5000억 원 규모의 합성 천연가스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의 협약을 한국남부발전, 한국전력공사 등과 체결했다. 10월에는 포스코파워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최신형 복합발전단지를 건설하고 신에너지 자원을 개발해 대규모 복합에너지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삼척 클린 복합에너지(Clean Energy Complex)’ 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협약도 체결했다.
한편 삼척은 에너지 도시와 관련하여 원전 유치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삼척시 근덕면 동막·부남리 마을에 2008년 소방방재 산업단지를 부지를 건설하였는데, 이곳에 2010년 삼척시에서 원전 유치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고 가결된 뒤 한국수력원자력에 신규 원전 건설부지 유치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듬해에는 유치협의회를 통한 찬성률 96.9%의 서명부까지 만들어 청와대와 한국수력원자력, 국회 등 5개 기관에 발송하며 원전 유치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후 2012년 9월에 삼척 원자력발전소 예정구역 지정이 고시되고, 2015년 7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총 300만 규모의 원전 2기를 삼척 또는 영덕에 건설한다는 내용을 확정 공고했다. 최종 입지는 다음 해 발전사업 허가단계에서 확정 예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원전 유치 주민 투표 실시 요구를 거절했다며 시민들이 시장 주민 소환 투표를 하였으나 투표율이 낮아 개표가 무산되는 등의 갈등을 겪었다. 이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김양호 삼척시장이 당선되면서 원전 건설 백지화의 시동이 걸렸다. 삼척시는 원전 백지화에 대한 찬반 주민 투표를 실시하였고 유치반대[85%]의 결과가 나왔다.
삼척시는 원전 건설 대신 신재생에너지 산업 거점단지를 만들고 LNG를 활용한 수소생산과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복안이다. 동막, 부남지역과 인접해 지난해 동해-남삼척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포항에서 고성을 잇는 동해 북부선 철길과 태백-삼척을 잇는 복선 철길도 구체화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지고 있어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가능성을 더해 주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 거점 단지는 연구단지와 기자재 생산단지를 조성해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체와 연구기관을 대거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바닷가에 있고 맑은 날이 많은 장점을 살려 태양광, 파도, 지열, 해양열에너지 산업과 연구 거점 지역으로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이다. LNG를 활용한 수소산업 육성도 한국가스공사를 중심으로 마무리 단계가 한창인 제4 LNG 생산기지 건설 산업과 연계하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삼척호산항을 통해 러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되는 LNG를 이용하면 미래 산업인 수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LNG를 통한 수소생산 실증플랜트가 구축되면 석유화학공업과 자동차부품, 반도체산업, 의료산업 등 수소 관련 기업과 연관 산업 육성은 물론 연료전지 발전소와 수소빌리지까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