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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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社稷壇 |
영어공식명칭 | Samcheok Sajikd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당동 122-11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유재춘 |
건립 시기/일시 | 1395년(태조 4) - 삼척 사직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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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661년(현종 2) - 삼척 사직단 보수 |
건립 시기/일시 | 1772년(정조 48) - 삼척 사직단 부사 서각수가 증축 |
건립 시기/일시 | 1888년(고종 25) - 삼척 사직단 부사 정대무가 중수 |
폐지 시기/일시 | 1907년 - 삼척 사직단 폐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5년 - 삼척 사직단 발굴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 삼척 사직단 복원 |
소재지 | 삼척 사직단 - 강원도 삼척시 원당동 122-11 |
성격 | 제단 |
[정의]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있던 토지를 관장하는 신 ‘사신’과 곡식을 관장하는 신 ‘직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제단.
[개설]
서울과 각 지방에 설치되어 정기로 제사를 지냈다. 농경 사회에서 땅과 곡식이 국가의 근본이기 때문에 사신과 직신은 농업을 비롯한 민생과 관련된 최고 신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따라 사직단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면서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였다. 우리나라의 사직 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연원이 확인된다. 조선 건국 직후부터는 전국 주·부·군·현의 행정 단위마다 사직단을 세우고 사직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변천]
1395년(태조 4) 왕명에 따라 세워진 삼척 지역의 사직단(社稷壇)은 1661년(현종 2)에 보수되고, 그후 1772년(정조 48)에 부사 서각수(徐覺修)가 증축하였다. 그리고 1888년(고종 25)에 부사 정대무(丁大懋)[1824~?]가 중수하였다가 1907년에 폐지되었다.
[위치]
삼척 사직단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삼척시 원당동 122-11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삼척 사직단은 삼척 지역의 진산인 갈야산(葛夜山)[111.0m] 서편 가내골과 남서쪽으로 바로 접한 야트막한 구릉지에 위치한다. 제단은 대소형의 강돌과 석회암을 진흙으로 다져 4~5단 정도로 축조하였다. 기초석에 해당되는 가장 밑 부분은 다소 큰 돌을 이용하여 사방으로 돌려 쌓고, 그 기초석 위에다 약간 뒤로 물러나게 쌓은 구조이다.
계단은 제단의 사방 거의 중앙부에서 각각 확인된다. 문헌에는 단방 3장 5척[832.5㎝], 높이 3척[99.9㎝], 단각(壇脚) 3장 9척[965.7㎝]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단의 외부에 사방으로 둘러져 있는 담장은 대형 강돌과 석회암재 할석을 계단식으로 일렬로 놓았다. 그 사이에는 소형 잡석과 기와편, 그리고 진흙을 다져 덮은 토담 형태의 구조이다.
출입문지는 담장의 사방 중앙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각 문지(門址)[성벽을 출입하는 시설]의 외부에는 당시 출입문인 홍살문을 세운 지름 약 60㎝ 규모의 원형 적심이 좌우에 각각 남아 있었다. 문헌에는 문활(門闊) 1장(333㎝)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단의 남서쪽, 서쪽 담장의 출입문지 우측에서 확인되는 부속 건물은 폭설에 의하여 붕괴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건물지(建物址)[옛 건물의 터]의 주초석은 모두 4개로, 동쪽과 남쪽으로 석렬이 연결되어 있다. 동쪽은 서쪽 담장과 접해 있으며, 석렬 뒤편으로 많은 기와와 잡석이 깔려 있었다. 건물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장축[남-북] 길이 290㎝, 단축[동-서]길이 210㎝이다. 건물지 내부와 그 주위에서 많은 백자편과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현황]
현 삼척 사직단은 1995년 발굴 조사와 고증을 거쳐 1998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 복원됐다.
[의의와 평가]
현재 전국에서 발굴 보존되고 있는 각 지방 사직단은 7곳에 불과하며, 강원도에는 삼척시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