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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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湖山里城址 |
영어공식명칭 | Site of Castle in Hosan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
시대 | 고려 |
집필자 | 홍영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3년 - 호산리 성지 고려시대 건물지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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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호산리 성지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
성격 | 산성터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터.
[개설]
강원문화재연구소가 호산리 산성 내부를 발굴한 결과 기와를 얹은 건물지나 청자류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서 이 성이 유력 인물이나 유력층의 거주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척군(三陟郡)’명 기와는 삼척의 진산(鎭山)인 갈야산성과 삼척 관아 유적인 죽서루에서도 출토되었으며, 모두 소성 상태나 색깔이 흡사하였다. 삼척시갈야산 일대는 고려시대 삼척의 중심 지역이며, 호산리 산성 내에서도 ‘삼척군’명 기와가 출토되어 이 지역도 삼척군에 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 가운데 경부파상문호편은 호산리 산성의 상한을 시사하며, 3호 건물지 출토 ‘삼척군’ 명문 기와는 갈야 산성 출토 ‘삼척군무자연□(三陟郡戊子年□)’명 기와와 비교하여 고려 초인 성종(988년) 때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청자편과 생선뼈무늬[어골문(魚骨文)] 기와 등으로 보아 이 성의 중심 시기는 10~11세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호산리 산성 내에서 출토된 卍자무늬 기와는 동해시심곡리 산성에서도 출토되어 평면말굽형 산성의 축성 시기와 역사 성격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고고 자료로 해석한다면 호산리 산성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유물이 없기 때문에 고려 초기·전기에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기와를 얹은 건물지와 청자류의 출토와 함께 ‘삼척군’명 기와로 보아 호산리 산성은 고려시대의 치소성(治所城)이자 관아(官衙) 성격을 띤 그 일대의 행정 및 군사 중심 거점[마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또 바닷가에 연해 있다는 점에서 해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호산리 산성을 통일신라시대 삼척군 지역 죽령현(竹嶺縣)의 성(城)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최근 인근에서 신라 후기의 고분군도 발굴된 바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현성으로 기능하였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위치한다. 남쪽이 가곡천[월천(月川)] 하구이며, 동쪽은 동해 바다에 연접한 위치에 입지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가곡천 하구에 LNG 발전소를 건립하게 되면서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고,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호산리 산성 발굴을 실시하였다.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호산리 산성의 내부를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에 기와를 얹은 건물지임이 확인되었다. 건물지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에는 경부파상문호편, 청자편, ‘卍’자명 기와, ‘삼척군(三陟郡)’명 기와[3호] 등이 있다.
[형태]
호산리 산성은 동해안 바닷가에 자연 형성된 말발굽형[∩자형] 형태의 산 능선 상면을 평평하게 삭토하여 토성을 만들었다. 토성의 서쪽에는 강돌 및 깬돌[할석(割石)]으로 쌓은 문지가 남아 있고, 동남쪽으로는 자연스럽게 평지와 연결되는 출입부가 있다.
[출토 유물]
호산리 산성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에는 경부파상문호편, 청자편, ‘卍’자명 기와, ‘삼척군(三陟郡)’명 기와[3호]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호산리 산성은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져 산성의 역사 성격을 규명한 의의가 있고, 강원도동해안 지역에 분포하는 동일한 유형의 산성들을 분석하고 밝히는데 기여할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