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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653
한자 -
영어공식명칭 James Maginn
이칭/별칭 제임스 매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흥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1년 11월 15일연표보기 - 진 야고보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35년 12월 21일 - 진 야고보 사제서품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진 야고보 한국에 입국
활동 시기/일시 1939년 - 진 야고보 춘천교구가 신설되자 강원도에서 활동 시작
활동 시기/일시 1949년 10월 - 진 야고보 삼척본당 설립하고 주임으로 부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7월 4일연표보기 - 진 야고보 사망.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을 가지 않고 성당을 지키다가 북한군에게 피살
출생지 진 야고보 출생지 - 미국 몬태나 주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 경력 삼척본당 주임

[정의]

근현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인 신부.

[개설]

진 야고보 신부는 미국몬태나 주에서 1911년 11월 15일에 태어나 1935년 12월 21일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고 이듬해인 1936년 한국에 왔다. 한국말을 배워 가며 광주교구에서 선교사제의 삶을 시작한 신부는 1939년 강원도 지역이 서울교구에서 독립하여 춘천교구로 신설되자 강원도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9년 삼척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게 된 신부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을 가지 않고 성당을 지키다가 1950년 7월 4일 북한군에게 살해되었다.

[활동 사항]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 출신 진 야고보 신부를 비롯해 평강 및 이천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부들을 평강 감옥에 감금하였고, 12월 25일 춘천으로 압송하였다. 진 야고보 신부는 1942년에 석방되었지만 가택연금 조치를 받아 성사 집행 및 전교 활동을 할 수 없다가 광복 후 홍천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1947년까지 활동하였다.

1949년 휴가를 마치고 다시 입국한 진 야고보 신부는 삼척에 목조 건물을 구입하여 10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1949년 10월 강릉 임당동본당에서 분리된 삼척본당을 설립하였다. 진 야고보 신부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씻겨 주기도 하였고, 간혹 진 야고보 신부가 없는 틈을 이용하여 사제관에서 시계나 돈을 훔쳐 가는 아이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꾸준히 타이르며 바른길로 인도하였다.

진 야고보 신부가 삼척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피란을 준비하고 있던 신자들은 진 야고보 신부에게도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진 야고보 신부는 최후의 순간까지 성당을 지켜야 한다면서 신자들의 어떤 권유도 완강히 거부하였다. 또 떠나는 신자들에게 곤궁할 때 쓰라며 금고에 있던 돈을 나누어 주었다.

이후 북한군이 삼척 지역을 점령하면서 진 야고보 신부는 체포되었다. 진 야고보 목사는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올 테니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제단 앞으로 가 기도한 후 “나는 도망갈 사람이 아니오. 만일 내가 도망갈 사람이라면 벌써 도망쳤을 거요. 내가 도망가리라고 생각지 마시오. 다만 내 손을 묶지 말고 지금의 상태 그대로 놔주시오.”라고 하고선 총구 앞에서 차분하고 의연하게 걸어갔다.

감옥에 갇혀 있던 진 야고보 신부는 7월 4일 삼척시 자지리 마을 앞 하천변에서 살해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발견하여 가매장하였다. 1950년 10월 수복 이후 가매장되어 있던 진 야고보 신부의 시신은 1951년 10월 죽림동성당 성직자 묘역으로 이전해 안치되었다.

[묘소]

강원도 춘천시 죽림동에 소재한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성직자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진 야고보 신부는 ‘한국 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추진 대상으로 현재 시복 추진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시복을 추진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교황청 시성성은 이들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의 시복 심사와 관련하여 ‘문제없음’(Nihil obstat) 교령을 지난 2015년 7월 7일 자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앞으로 보내왔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하나님의 종 ‘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지역 교회 차원의 시복 심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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