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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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軸 |
영어공식명칭 | An Chuk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창식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남긴 고려 후기 문신.
[개설]
한국문학사에서 ‘경기체가’인 「관동별곡」[삼척시 경치와 풍경을 표현]과 「죽계별곡」[고향 죽계의 풍경 표현]의 저자이다.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이다.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 아버지는 안석(安碩)이다. 어머니는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활동 사항]
고려 후기 신흥유학자로 탁월한 글솜씨를 가졌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 단양부주부 등을 지내고, 1324년(충숙왕 11)에는 원나라 제과에도 급제하여 관리에 임명되었지만 부임하지 않고 돌아와 성균악정과 우사간대부를 지냈다. 충혜왕 때는 강원도존무사로 파견되었다. 1332년 판전교지전법사(判典校知典法事)에서 파면되었다가 전법판서(典法判書)로 복직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다시 파직되었다가 충혜왕의 복위로 전법판서·감찰대부(監察大夫)에 등용되고 이어서 교검교평리(校檢校評理)로서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냈다. 그 뒤 판정치도감사가 되어 양전(量田) 향정[세입을 위하여 토지를 측량하는 일]에 참여하기까지 여러 업적을 남겼다. 안축은 『관동와주(關東瓦注)』와 「관동별곡」, 「죽계별곡」 등 다양한 문집을 남겼다. 특히 「관동별곡」은 안축이 강원도존무사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죽서루를 비롯한 관동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읊은 것이다. 「죽계별곡」은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 풍기의 경치를 읊은 것으로, 고려 신흥사대부의 넘치는 의욕과 생활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다. 작품들은 모두 이두(吏讀)로 표기되어 있다.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까지 오른 그는 충렬·충선·충숙의 삼조실록(三朝實錄)을 수찬하였다. 1348년(충목왕 4) 봄에 고향인 순흥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다가 잠들었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학문과 저술]
『관동와주(關東瓦注)』, 『근재집(謹齋集)』, 「관동별곡(關東別曲)」, 「죽계별곡(竹溪別曲)」
[묘소]
안축의 묘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눌목리대덕산에 위치한다.
[상훈과 추모]
1544년(중종 39) 당시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있던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안축을 소수서원(紹修書院)에 합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