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조씨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노송리는 마을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노송(老松)이 많아 놀뫼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산(老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노송리에는 마근터, 노리미, 강당, 움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근터마을은 노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소나무...
-
세종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 역사상 성씨의 유래를 보면 이미 백제시대에 8대 성(姓)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리지는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기록이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씨 기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연기현과 전의현 외에 지금...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월하리는 민후건의 호 월하(月河)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勢道家) 민후건이 정치를 접고 풍류를 즐기면서 보냈는데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불렀다. 월하리에는 가래터, 구서원, 전동, 월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래터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논밭을...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부인 한양조씨는 장이상에게 출가하여 시조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두 차례 병환에 모두 약을 구해 드려 병환을 낫게 하였다. 남편이 노환으로 숨지자 식음을 전폐하고 6일 만에 세상을 떠난 효부이자 열녀이다. 장이상 처 한양조씨의 아버지는 조우규(趙禹圭)이다....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한양조씨는 병참공파로 조극이 공주[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로 입향하였으며 조극의 5세손인 조길환, 조일환 형제의 후손들이 각각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연서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에 세거하여 온 토착 사족(士族)[문...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한양조씨는 병참공파로 조극이 공주[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로 입향하였으며 조극의 5세손인 조길환, 조일환 형제의 후손들이 각각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연서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에 세거하여 온 토착 사족(士族)[문...
-
황윤보를 시조로 하고 황석남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회덕황씨는 세마공파의 황석남이 1600년대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풀려난 후 처향(妻鄕)[아내의 관향(貫鄕)]이면서 당시에는 충청북도 청주시 땅이었던 소정면 소정리에 입향한 것으로 추측된다. 후손들이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과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도 거주하고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