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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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礪山宋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윤윤희 |
분관|분종 시기/일시 | 1300년대 전반 - 송서 정가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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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여산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
입향지 | 여산송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봉대리 |
세거|집성지 | 여산송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봉대리 |
묘소|세장지 | 송인남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봉대리 |운주산 아래 |
성씨 시조 | 송유익 |
입향 시조 | 송인남 |
[정의]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인남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하고 송서(宋瑞)[?~1353]를 파조로 하는 여산송씨 정가공파(正嘉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봉대리 고소재 마을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여산송씨의 시조 송유익은 고려시대에 진사(進士)로서 여산군(礪山君)에 봉하여졌다. 송유익의 증손자 송송례(宋松禮)[1207~1289]는 고려 원종 때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와 찬성사중찬(贊成事中贊)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여산송씨는 크게 원윤공파(元尹公派)·밀직공파(密直公派)·소윤공파(少尹公派)·지신공파(知申公派)·정가공파의 다섯 파로 갈라져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전동면 봉대리 여산송씨 입향조는 송인남(宋仁南)이다. 정가공파 12세인 송인남은 벼슬을 그만두고 한양에서 봉대리까지 걸어왔다고 전하여진다. 선대의 묘소가 진천에 있고 송인남의 처가 봉대리에 세거하던 달성서씨(達城徐氏)라는 사실로 미루어 진천에서 살다가 처가가 있는 봉대리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1871년 『호서읍지』에는 여산송씨를 교우성씨(僑寓姓氏)로 기록하고 있다. 전동면 봉대리 여산송씨는 1988년에는 37가구, 2019년 5월에는 35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에 거주하는 여산송씨는 1985년에는 75가구 326명, 2000년에는 85가구 318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에 거주하는 여산송씨는 1,129명으로 남자 564명, 여자 565명이다.
[관련 유적]
전동면 봉대리의 여산송씨 입향조 송인남이 망경대산에 올라 임금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무사 안녕을 빌었다 하여 ‘망경대’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한다. 전동면 봉대리 고소재마을에 여산송씨 정가공파 재실(齋室)이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9일 달성서씨 시제(時祭)를 먼저 지내고 나서, 음력 10월 10일 여산송씨 시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