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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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孫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868년(고종 5) - 손창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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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900년대 초반 - 손창조 입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7년 - 손창조 소정초등학교 건립에 힘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7년 - 소정초등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손창조 개교창설공덕비를 세움 |
본관 | 밀양손씨 본관 - 경상남도 밀양시 |
입향지 | 밀양손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 |
세거|집성지 | 밀양손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 |
묘소|세장지 | 손창조 개교창설송덕비 -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학교말길 10 |
성씨 시조 | 손순 |
입향 시조 | 손창조 |
[정의]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창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손씨 시조 손순(孫順)의 선계는 신라 개국 당시 사로국 6촌 촌장의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이다. 구례마는 박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사성(賜姓)[임금이 공신에게 성(姓)을 내려 주는 일 또는 임금으로부터 성을 내려 받는 일]을 하사 받아 손씨가 시작되었다.
손순은 흥덕왕 때 지극한 효자로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하여졌고,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은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응천은 밀양의 옛 이름]에 봉하여졌다. 이후 후손들은 손순을 시조로 하고 밀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 경위]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 밀양손씨 입향조는 손창조(孫昌朝)[1868~?]이며, 조선 후기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을 지냈다. 선대 묘소가 1900년 전에는 아산, 목천, 논산 등에 있는 사실로 미루어 손창조의 선대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산 것으로 추측된다. 손창조는 조선의 국운이 기울자 일제의 압박을 피해 1900년대 초반 대곡리로 오게 되었다 한다.
[현황]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세종특별자치시의 밀양손씨는 연기군으로 있던 1985년에는 61가구 298명, 2000년에는 87가구 295명으로 확인된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밀양손씨는 1,132명으로 남자 538명, 여자 594명이다.
[관련 유적]
입향조 손창조는 1937년 소정보통학교[현 소정초등학교]를 건립하기 위하여 학교 부지와 가산을 희사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다. 이에 1987년 소정초등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개교 창설 송덕비를 세워 학교 건립에 기여한 손창조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