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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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埈美 |
영어공식명칭 | Sin Junmi |
이칭/별칭 | 사휴,초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491년(성종 22) - 신준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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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19년(중종 14) - 신준미 현량과에 3등으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45년(인종) - 신준미 봉상시주부와 성균관전적에 임명됨 |
몰년 시기/일시 | 1562년(명종 17) - 신준미 사망 |
출생지 | 신준미 출생지 - 서울 |
거주|이주지 | 신준미 은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
묘소|단소 | 신준미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산509-1 |
사당|배향지 | 영모재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
사당|배향지 | 한림정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평산 |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에 은거한 인물.
[개설]
신준미(申遵美)[1491~1562]는 본관(本貫)이 평산(平山), 자는 사휴(士休), 호는 초려(草廬)이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스승인 조광조가 사사(賜死)[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되고 자신의 과거급제가 취소되자 공주현[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은거(隱居)[세상을 피해서 숨어 삶]하였다. 장남 신도(申燾)는 청주한씨(청주군), 셋째아들 신웅(申雄)이 순천박씨(전의현), 부안임씨(연기현)와 혼인하였는데, 이들 성씨는 모두 영곡리와 가까운 지역의 대표적인 세거성씨였다.
[가계]
신준미의 증조할아버지는 신원우(申元祐), 할아버지는 신영석(申永錫), 아버지는 별제(別提)를 지낸 신원(申援)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 파성군 이철동(李哲仝)의 딸이고, 배위(配位)[남편과 아내가 모두 죽었을 때 그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는 전주이씨 이의(李義)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준미는 1519년(중종 14) 재능·학식·행실·지조의 천목(薦目)[사람을 천거하는 데 필요한 명목]에 해당하여 현량과(賢良科)에 3등으로 급제하였고, 예문관 검열에 제수(除授)[추천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사사되고 자신의 과거급제도 취소되자 공주에 내려와 금강 가에 한림정(翰林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영곡리와의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화가 진정된 후 1545년 현량과를 복치(復置)[원래대로 설치함]하라는 인종의 유지(遺旨)[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품은 생각]에 따라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
그러나 인조·명종의 외척 간 투쟁 중 다시 과거급제가 취소되었다가 1568년 사림파(士林派)가 정계를 장악하며 복과(復科)[과거 급제자를 낙제한 것으로 하였다가 다시 합격시키는 일]되었다.
신준미의 후손들이 금남면 일대에 번성하며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감성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원봉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묘소]
신준미의 묘소와 묘비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있는 신준미의 옛 집터에 영모재를 지어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