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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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師俊 |
영어공식명칭 | Gim Sajun |
이칭/별칭 | 명숙,사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호 |
출생 시기/일시 | 1439년(세종 21) - 김사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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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520년(중종 15) - 김사준 정려 건립 |
사당|배향지 | 안동김씨 쌍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김사준(金師俊)[1439~1520]의 본관은 안동,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사암(思庵)이다. 예조참의 김구년(金龜年)의 둘째 아들이다.
김사준의 아버지 김구년은 1455년 단종 폐위, 사육신 처형, 집현전 폐지 사건을 보고 난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전의면 양곡리로 돌아와 은거(隱居)[세상을 피해 숨어서 삶]하였다.
어머니 이씨는 효령대군(孝寧大君) 아들 의성군(誼城君) 이채(李寀)의 딸로, 남달리 출중한 가문이었다.
김사준은 어린 나이에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서 자랐고, 항상 부모를 효로 섬겼다고 한다.
[활동 사항]
김사준의 효심을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가 부스럼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근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때가 엄동설한인지라 김사준은 매일 연못 빙판에 들어가서 기도하던 중에 연못에서 연근이 나왔고, 연근을 먹은 부친은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75세에 사망하자 3년을 시묘하였으며, 이를 들은 예종이 1469년 친히 칙사를 보내어 위로하였다고 한다.
김사준은 선산 아래의 움집에 기거하면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후세들을 양성하며 효행과 덕을 쌓는 데에만 힘썼다.
1480년(성종 11) 김사준의 조카 김오(金鋘)가 무과에 급제하여 김사준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끝내 만나 주지 않고 은거도 덕목이라 생각하였다.
이처럼 집안에서는 계유정난 이후 조정에서 벼슬한 일이 없음을 들어 오히려 조카를 꾸짖었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로 단종에 대한 절의가 대쪽 같았다 한다.
[상훈과 추모]
1520년 김사준이 사망한 후 명종 대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내려졌다. 명종이 김사준에 대하여 “하늘이 내린 효자로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出天之孝 永世不忘]”라고 치하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효자거리에는 세종조 대사헌을 지낸 선대 김익정과 나란히 효자문이 건립되어 있다.
효자문은 옛 연기군 시절에는 김익정·김사준 정려로 불렸다가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6호로 지정되고 안동김씨 쌍효 정려로 문화재명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