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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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百悅 |
영어공식명칭 | Gim Baekyeo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호 |
출생 시기/일시 | 1816년(순조 16) - 김백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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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68년(고종 5) - 김백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13년 - 효자 김백열 정려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90년(고종 27) - 김백열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되고 명정 내림 |
출생지 | 김백열 출생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
사당|배향지 | 효자 김백열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효자길 193-1[내판리 532]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김백열(金百悅)[1816~1868]의 본관은 안동이고, 김희중(金熙仲)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김백열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으며, 말을 배울 때부터 윤리 도덕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김백열 나이 5세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던 중 하루는 꿈에 신선이 나타나 곶감이 아버지의 병에 특효약이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김백열이 이튿날 곶감을 구하여 드리니 지성이면 감천인지 아버지의 병이 수일 만에 쾌차(快差)[병이 깨끗이 나음]하였다.
어린 소년의 효행이 감영(監營)[조선시대에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아]에 알려지자 출천지효(出天之孝)[하늘이 내린 효자]라 하게 하고 명정을 내려 후세의 귀감(龜鑑)[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으로 삼았다.
김백열의 효행은 공주(公州) 지역 유학자 이병연(李秉延)[1894~1977]이 편찬한 백과사전적 지리서 『조선환여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김백열의 행적을 기려 1890년(고종 27)에 증(贈) 동몽교관 조봉대부로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고,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이 내려졌다.
효자 김백열 정려는 1913년에 건립되었으며, 옛 연동면사무소 앞 작은 언덕 위에 동리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조성하였다.
효자 김백열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팔각석기둥에 올렸다.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