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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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協 |
영어공식명칭 | Gang Hyeop |
이칭/별칭 | 자경,농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호 |
출생 시기/일시 | 1674년(현종 15) - 강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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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50년(영조 26) - 강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05년(광무 5) - 효자 강협 정려 세움 |
사당|배향지 | 효자 강협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발산리 73-2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신천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강협(康協)[1674~1750]은 본관이 신천이며 자는 자경(子慶), 호는 농은(農隱)이다.
중시조는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 강지연(康之淵)으로, 강지연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강후돈(康厚敦)으로, 강협은 강후돈의 넷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강협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뜻을 잘 따르고 어질고 착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도 매일같이 부모님의 잠자리를 돌봐 드리며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드리는 강협의 효성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13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화사동 골짜기에 장례를 치르고 어린 나이에도 3년 간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굶주림을 참아 가며 겨우 목숨만을 유지할 정도로 애도하였다.
학문도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시골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만년에는 모정(茅亭)[짚이나 새 등으로 지붕을 인 정자]를 꾸려서 동네 일가 친척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소학』과 사서를 바탕으로 충과 효를 가르쳤다.
[상훈과 추모]
강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5년 조정희(趙定熙)와 장철상(張喆相) 등이 건의하여 효자 정려(旌閭)[효자, 충신,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세웠다.
효자 강협 정려는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발산리 산73번지에 있으며,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정려는 기단석을 3단으로 거칠게 쌓아 자리를 잡은 뒤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렸다.
정려 내부 중앙 상단에는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 현판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