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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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應軒妻彦陽金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철원 |
추모 시기/일시 | 1638년(인조 16) - 열녀 언양김씨 정려 명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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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793년(정조 17) - 열녀 언양김씨 정려 건립 |
사당|배향지 | 열녀 언양김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청연로 622-8[송용리 99-3]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언양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개설]
언양김씨는 장응헌(張應軒)의 부인으로, 남편은 결성장씨이다. 언양김씨는 병자호란에 적병에게 끌려가는 것에 저항하여 은장도로 자결한 열녀이다. 일설에 의하면 적병에게 쫓기다가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익사한 열녀라고도 한다.
[가계]
장응헌 처 언양김씨의 아버지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이다.
[활동 사항]
『여지도서』, 『충청남도읍지』, 『연기지』에 따르면 언양김씨는 16세에 장응헌에게 출가하여 시아버지와 남편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다. 그러던 중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언양김씨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산속으로 피란하여 바위굴에 숨어 있었지만 적병에게 발각되었다. 적병은 두 아이를 죽이고 언양김씨를 붙잡아 말에 태워 끌고 가려 하였다. 그러나 언양김씨가 은장도를 꺼내 스스로 목을 찔러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러나 『조선환여승람』에는 적병이 언양김씨를 말에 태워 끌고 가던 중 강가에 이르자 언양김씨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적병이 놀라서 미안한 마음에 열녀라고 쓴 표목(標木)[무엇을 표시하기 위하여 세우거나 박은 말뚝]을 깎아 세웠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상훈과 추모]
1638년(인조 16)에 관찰사가 조정에 보고하여 명정을 받았으나 정려를 건립하지 못하고 있다가 1793년(정조 17) 송용리에 정려를 세웠다. 열녀 언양김씨 정려는 연기군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1호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