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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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漢紹 |
영어공식명칭 | Gwak Hans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항일 의병가.
[개설]
곽한소(郭漢沼)[1882~1927]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고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 일대]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하였다.
[활동 사항]
곽한소는 1905년 음력 12월 스승 최익현(崔益鉉)의 지시에 따라 항일 세력 규합(糾合)[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을 위하여 힘썼던 인물이다. 최익현이 작성한 ‘노성궐리사강회시서고조약(魯城闕里祠講會時誓告條約)’에 연명하였으며 또한 지방 향교에 발송하기 위하여 조약문을 수십 통 복사(複寫)하여 전달하였다. 그리고 같은 달 25일 노성(魯城) 궐리사(闕里祠) 집회에 참석하였다. 1906년 음력 1월 최익현이 작성한 ‘창의격문(倡義檄文)’ 수십 통을 정서(整書)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또한 안병찬(安炳瓚)·박창로(朴昌魯) 등과 연락하며 거의(擧義)[의병을 일으킴]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음력 2월 최익현의 지시에 따라 상소문(上疏文),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성토하는 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는 ‘청원청국서(請援淸國書)’ 등을 기초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음력 윤사월 최익현의 의진에 합류하려다 태인 의병의 패배 소식이 들리자 음력 5~8월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무기를 매입하고 홍주성(洪州城) 전투에 패배한 의병 잔여 세력 규합을 시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곽한소의 공적을 기리어 2015년 건국포장(建國褒章)[상훈법 20조로 규정된 건국훈장 다음 가는 훈격]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