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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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永福 |
영어공식명칭 | Im Yeongbok |
이칭/별칭 | 임양일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 임영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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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35년 - 임영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임영복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됨 |
출생지 | 임영복 출생지 -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 509[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509-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임영복(林永福)[1874~1935]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 출신으로 연기군 남면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임영복은 1919년 3월 31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3일부터 연기 지역과 인근 청주 지역의 면민들은 대대적인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면에서는 3월 23일에 청주의 강서·강외와 연기군의 북면·서면 면민들과 함께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31일에는 방축리·보통리·양화리·진의리·송암리 등지에서 횃불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4월 1일에는 송담리·갈운리 등에서 횃불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임영복은 3월 31일 김봉식(金鳳植)[진의리]·조의순(趙義淳)·임덕문(林德文)[양화리]과 함께 이덕민(李德敏)의 집에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양화리 임덕화(林德化)를 앞세워 주민 100여 명과 함께 아월산(鴉月山)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高唱)[노래·구호·만세 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하였다. 임영철(林榮喆)을 선두로 하여 진의리 주민과 함께 마을 주위의 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다시 송담리로 이동을 하였는데, 이미 송담리에서는 주민들이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과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임영복은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임영복의 공적을 기리어 2008년 건국포장(建國褒章)[상훈법 20조로 규정된 건국훈장 다음 가는 훈격]을 추서(追敍)[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