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724 |
---|---|
한자 | 林憲奎 |
영어공식명칭 | Im Heong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 임헌규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954년 - 임헌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임헌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됨 |
출생지 | 임헌규 출생지 -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87[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8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임헌규(林憲奎)[1885~1954]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대평리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임헌규는 1919년 3월 23일 옛 금남면 대평리 대평리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임헌규는 임병주(林炳周)·이덕주(李德周)·김봉식(金鳳植)·임순철(林筍喆)·임헌빈(林憲斌) 등에게 독립만세운동 벌이자고 제의한 뒤 3월 23일 대평리시장에 함께 나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高唱)[노래·구호·만세 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하였다. 시장 군중들이 합세하여 시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을 하였다. 임헌규는 대평리시장 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일본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이 선고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임헌규의 공적을 기리어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追敍)[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