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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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溪里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도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규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도계리에서 사회적 경제 기능을 수행하던 거대한 규모의 장터 두레.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도계리 장터 두레는 도계들 전역에 걸쳐 있던 거대한 규모의 두레로 범위가 1,000마지기에 달하고 80여 호의 민가를 아울렀다고 전한다.
장을 포함한 두레인 탓에 경제적인 면에서 상당히 활성화된 두레였으며,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었다는 특징을 띤다. 타 마을과의 공동 작업 및 상호교류가 자주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전통 두레들은 서로 극심한 텃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도계리 장터 두레 역시 봉안리, 신학리, 평기리, 하봉리 등의 두레와 잦은 두레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보통 두레 싸움이 잦을수록 두레 내부의 결속력이 단단해진 경우가 많으나 도계리 장터 두레의 경우 농부들과 장사꾼들의 화합이 어려워서 결속력은 약한 것으로 보인다.
[도계리 장터 두레의 구성]
두레의 구성은 ‘좌상’, ‘공원’, ‘총각좌상’ 각 1명으로 이뤄졌다.
도계리 장터 두레는 독특하게도 ‘소렴’이라는 이름의 심부름꾼을 두어 모든 두레꾼의 심부름을 전담하게 하였다.
‘공원’은 일종의 회계담당자 및 총무로, 예산관리는 물론 출근부 관리를 하여 두레꾼들에게 품삯을 배분해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총각좌상’은 청년들의 대표자 역할로, 젊은 두레꾼들을 지휘하거나 좌상의 심부름꾼 역할을 수행하였다.
[도계리 장터 두레 행사]
도계리 장터 두레는 한물두레로, 1년에 한 번만 논매기를 하였다.
봄과 여름 2회에 걸쳐 각각 ‘봄 두레 먹는 날’과 ‘여름 두레 먹는 날’을 행하였다.
봄 두레에는 전년도 결산·당해 일정조율·품삯 등을 결정하였다. 여름 두레에는 논매기의 대가로 품삯을 나눠 주고 술과 음식 등을 준비하여 마을 고사를 즐기곤 하였다.
도계리 장터 두레는 큰 규모만큼이나 실력이 뛰어난 풍장패를 보유하고 있었다. 타동에서 온 풍장꾼들도 기량면에서 도계리 장터 두레의 풍장꾼들을 따라가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도계리 장터 풍장패의 독특한 점으로는 역두발 상모를 꼽을 수 있다. 별도의 교육을 시행하여 육성한 역두발 상모꾼을 중심으로 풍장판을 짰으며,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