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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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梅水里 |
영어공식명칭 | Maesu-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매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마을 뒤에 있는 매적산(梅積山)[495.9m]의 ‘매(梅)’ 자와 수남(水南)의 ‘수(水)’ 자를 합쳐 ‘매수(梅水)’라고 이름하였다. 매수1리의 자연 마을로 무나물[무나말·하남(河南)·수남(水南·樹南)·수촌(水村)]과 다징기[가수촌(加樹村)]가 있고, 매수2리의 자연 마을로 새월[신월(新月)]과 불미골[야동(冶洞)] 등이 있다.
무나물은 매수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이천(伊川)의 ‘물길이 흘러내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순우리말인 ‘무나말’을 한자 훈을 차용하여 무나말→무나물→수남(水南)→수남(樹南)→수촌(水村)의 형태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 전기 홍유하(洪有河)가 이 마을을 개척하여, 흐르는 물이 남방에 있다고 하여 이른 ‘물남방’에서 무나물이 되었다는 설, 또는 하남이라 부르다가 300여 년 전 이광필(李光弼)이 하남을 수남(水南)으로 개칭하였다는 설도 있다. 다징기는 수남 동쪽에 있는 마을로, 징기와 이천 사이에 인접하여 있으므로 다징기 또는 가수촌이라고 하였다.
새월은 태자봉[295.9m] 북쪽 세천 계곡에서 남동향으로 자리하였는데, 새로이 돋워진 땅이라는 의미의 새올을 한자의 훈과 음을 빌려 신월(新月)로 표기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불미골은 새월 남쪽에 있으며, 불밋골 또는 야동(冶洞)이라 불렸다. 불미골은 벽진국의 병기와 농기구 등 생활 용구를 생산하고 정비했던 곳으로, 예부터 야철(冶鐵)을 하던 풀무간[대장간]이 있어 불무골이라 불린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벽진군(碧珍郡)에 속하였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성주군과 통합되어 경산부(京山府) 명간방(明澗坊)[밝간이방]에 편제되었다. 1555년(명종 10) 목사 노경린(盧慶麟)이 명간방과 암회방(巖回坊) 합하고 명암방(明岩坊)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월동, 수남동, 가수동, 정곡동, 야동 등을 합하여 매수동으로 하고 명암면과 운곡면(雲谷面)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매수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매수리는 북서쪽의 매적산, 남서쪽의 태자봉 등 250~450m 높이의 산지들이 서쪽 지역에 분포하고 있고, 매수2리 야동 동쪽 산지에는 “큰 공깃돌을 세 개 포개 놓은 듯한 바위가 놓여 있는데 높이가 9척이며 지름은 13척이나 되어 자못 기괴하다.”라며 『경산지(京山志)』와 『성산지(星山誌)』 산천(山川)조에 기록된 태자 바위가 있다. 태자 바위는 차별적인 풍화 작용을 받은 바위가 탑처럼 쌓인 암괴 미지형인 토르(tor)이다. 매적산에서 발원한 십만천(十萬川)이 곡저 평야를 형성하며 매수2리 새월과 매수1리 수남을 지나 가수촌에서 이천으로 유입된다. 동쪽에는 경계지를 따라 남동류하는 이천에 의해 범람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현황]
매수리는 벽진면의 남서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벽진면수촌리와 봉계리, 남부와 서부는 대가면 흥산리, 금수면명천리와 어은리, 북부는 벽진면 외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11㎢이고, 매수1리와 매수2리 2개 행정리에 175가구, 335명[남 174명, 여 1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벽진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 수촌리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약 400m 떨어져 있다. 매수리 중앙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국도 제30호선이 수촌리와 금수면 광산리와 이어져 있고, 동쪽 경계지의 이천교에서 남쪽으로 지방도 제913호선이 이어져 흥산리와 연결된다. 평야 지대에는 대부분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성주군의 특산물인 참외를 시설 재배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조선 숙종(肅宗) 때 유학자인 이하상(李夏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계술재(繼述齋), 조선 영조(英祖) 때 처사(處士) 이덕종(李德琮)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학남재(鶴南齋), 월강(月岡) 문순한(文舜漢)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월강정사(月岡精舍)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