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48
한자 月會堂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성주로 2495[수촌리 890-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지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16년연표보기 - 월회당 창건
이전 시기/일시 1664년 - 월회당 성주군 벽진면 성주로 2495[수촌리 890-3번지]로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8년 - 월회당 전사청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21일연표보기 - 월회당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
현 소재지 월회당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성주로 2495[수촌리 890-3]지도보기
성격 강당
양식 맞배지붕집
정면 칸수 7칸
측면 칸수 1칸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강당.

[개설]

월회당(月會堂)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1481~1553]이 1516년(중종 11)에 고향에서 주자(朱子)가 가감, 증보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교육하고 시행하기 위해 향약 강회를 열었던 장소이다. 월일강회(月一講會), 즉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여 향약 강회를 가져야 한다라는 뜻에서 명명한 것으로, 강회에는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게 하였다. 여희림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천지(天之), 호는 원정이다. 김안국(金安國)·소세양(蘇世讓)·정사룡(鄭士龍)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의흥현감(義興縣監)과 창녕현감(昌寧縣監) 등을 지냈다. 1517년(중종 12)에 복성군(福城君)의 사부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1533년(중종 28)에 귀양을 갔다. 1538년(중종 33)에 재등용되어 지평(持平)에 올랐다.

[위치]

월회당은 성주군 벽진면 성주로 2495[수촌리 890-3번지]에 있다. 성주군 벽진면 수촌 삼거리에서 수촌2리 마을 회관 방면에 자리한다.

[변천]

월회당은 1516년에 여희림이 창건하였으며, 1664년(현종 5)에 여희림의 자손 여효회가 현재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88년에 전사청(典祀廳)과 고직사(庫直舍)를 보수하였다.

[형태]

월회당은 정면 7칸, 측면 1칸, 전사청은 정면 3칸, 측면 1칸, 고직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맞배지붕집 형태이다. 월회당은 중앙에 마루 2칸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 2칸을 배치한 중당 협실형 구조이다.

[현황]

월회당은 1984년 5월 21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1919년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보낼 파리 장서(巴里長書)를 써서 송준필(宋浚弼)김창숙(金昌淑), 여상윤(呂相胤) 등이 서명한 곳으로, 독립운동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월회당은 우리나라 최초로 향약을 교육하고 시행한 장소로서, 또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 만세 운동의 본거지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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