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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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大山里道東宅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39[대산리 40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도영 |
건립 시기/일시 | 1850년 - 성주 대산리 도동댁 건립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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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6월 28일 - 성주 대산리 도동댁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성주 대산리 도동댁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39[대산리 409] |
성격 | 전통 가옥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성주 대산리 도동댁(星州大山里道東宅)을 건립한 이기상(李驥相)[1826~1903]의 자는 치천(穉千), 호는 민와(敏窩)이다. 사촌 형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을 좇아 학문을 익혔으며, 1855년(철종 6)에 생원시(生員試)에 장원 급제한 후 통례원 인의(通禮院引儀)를 지냈다. 덕기(德器)가 온화하고 인정이 두터워 사람을 대하는 데 겸손하였고, 검약(儉約)을 가법으로 삼아 유명하였다. ‘도동댁’이라는 이름은 현재 소유자의 어머니가 도동서원(道東書院)이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 마을에서 시집을 와서 붙인 이름이다.
[위치]
성주 대산리 도동댁은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39[대산리 409번지] 성주 한개 마을에 있는데, 마을의 전체적인 배치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다.
[변천]
성주 대산리 도동댁은 조선 철종조에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의 둘째 아들인 민와 이기상이 성주 응와 종택(星州凝窩宗宅)에서 분가하여 1850년(철종 1)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형태]
모두 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중문채가 보인다. 중문채의 오른쪽에는 사랑 내정과 함께 사랑채가 있으며, 안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사랑채 서쪽에는 정침과 고방채, 중문채가 튼 ‘口’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황]
성주 대산리 도동댁은 2004년 6월 28일에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성주 대산리 도동댁은 성주 한개 마을의 중심에 있어 중요한 곳을 점하고 있다. 또 튼 ‘口’ 자형 배치로 지역적인 특징을 잘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