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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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村洞契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미진 |
작성 시기/일시 | 1619년 - 「사촌동계서」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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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성격 | 문서 |
관련 인물 | 정구(鄭逑) |
[정의]
한강 정구가 성주 사촌 지역민을 위해 결성한 동계의 결성 이유와 내력을 기록하기 위해 1619년에 작성한 서문.
[개설]
「사촌동계서(沙村洞契序)」는 성주 지역의 향풍 진작과 향촌 질서 유지를 위해 시행되었던 향약(鄕約) 및 동계(洞契) 관련 자료로서, 저자의 『한강집(寒岡集)』권10에도 수록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사촌동계서」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성주 사촌동(沙村洞)의 동계가 만들어진 이유와 참여 인원, 임원들의 명칭 등의 연유를 밝히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본 동계는 한 고을에 살면서 서로 예(禮)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조직하는 것으로 사족들만의 모임이 아닌 하층민들도 참여하는 형태로 구성하였으며, 임원(任員)에 대해 도약정(都約正), 부약정(副約正) 등 따위의 명칭을 쓰지 않고 유사(有司)라고 이름한 것이 특징적이다. 당시의 성주 지역은 임진왜란 이후 피해가 극심하여 전 농경지의 2/3 이상이 파괴되었던 바 이에 대한 복구에 집중해 오던 시기로, 사촌동계의 조직을 통해 하층민들을 단속하고, 임진왜란 이후 축소된 재지사족들의 권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형태]
재질은 종이로, 크기는 31.3×27㎝, 반곽(半郭)의 크기는 19.6×15.5㎝이다.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고,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형태이다.
[구성/내용]
서문에 따르면, 한 고을에서 함께 살면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공공의 도리를 따르며 살아가기 위해 조직한 것이 바로 이 사촌(沙村) 지역의 동계이다. 사촌동계에는 사촌 지역민의 이름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빠짐없이 기록하여 각종 길흉사에 축하와 위문을 하였는데, 이를 통해 특히 근심과 재앙을 당했을 때 서로 구제해 주는 일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계의 임원에 대해 도약정 혹은 부약정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모두 유사라 한 것도 바로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는 이러한 의식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강 정구가 이보다 앞서 조직한 동계 관련 기록으로 「계회입의(契會立議)」가 있다. 성주 지역의 향약은 여희림(呂希臨)[1481~1553]으로부터 시작되어 한강 정구에 의해 보다 발전적인 형태로 나타났으며, 뒤이어 배정휘(裵正徽)는 회로당(會老堂)에서 향약을 시행하고 매달 초하루에 강회를 열었으며, 조선 후기 최용한(崔龍翰)은 매월 초하루에 모임이 있을 때 남전향약(藍田鄕約)을 강론하여 권선징악의 도를 행하게 하여 무너진 윤리를 다시 일으키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사촌동계서」는 앞서 정구가 기록한 「계회입의」와 함께 성주 지역의 향풍 진작과 향촌 질서 유지를 위해 시행되었던 향약 관련 자료로서, 조선 후기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 양상과 향약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사례로서 지니는 가치는 적지 않다. 성주 지역의 향풍 진작과 향촌 질서 유지를 위해 시행되었던 향약 및 동계 관련 자료로서, 이 외에도 이유(李乳)의 족계(族契), 장현광(張顯光)의 족계, 이도장(李道長)의 상지향약(上枝鄕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