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37 |
---|---|
한자 | 星州裵氏 |
영어공식명칭 | Seongju Bae Clan |
이칭/별칭 | 성산 배씨(星山裵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나 |
본관 | 성주 - 경상북도 성주군 |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대황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 |
성씨 시조 | 배위준 |
입향 시조 | 배인경 |
[정의]
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배인경을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신라 6부촌 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의 촌장 지타(祗陀)를 연원으로 두고 있다. 박혁거세를 옹립한 신라 개국공신으로 후대에 문양(文讓)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이후 고려의 개국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연원]
성주 배씨(星州裵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에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을 지낸 배위준(裵位俊)이다. 5세손인 배인경(裵仁慶)이 고려 충선왕 때에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지내고, 충숙왕 때에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으로 봉해지면서 성주, 즉 성산을 관향으로 삼았다. 흥안과 성산은 성주의 옛 이름이다. 배인경은 아들 형제를 두었다. 고려 때에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를 지낸 배문적(裵文迪)과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었던 배무적(裵武迪)이다. 후손 중 성주에 거주한 분파로는 배문적의 후손들인 매곡공파(梅谷公派),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서암공파(書巖公派) 등과, 배무적의 후손들인 정절공파(貞節公派)가 있었다.
[현황]
경상북도 성주의 성주 배씨는 월항면 보암리 보동, 대가면 옥련리 상삼과 도남리 전인, 후포, 성주읍 대황리 견동 등의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 보동에는 배문적의 8세손인 매곡공파(梅谷公派) 배도(裵壔)의 7세손 배근상(裵根尙)의 후손과, 13세손 배덕추(裵德樞)의 후손이 500여 년간 세거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리 상삼에는 배문적의 5세손 배윤(裵閏)을 중심으로 하는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가 400년간 살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전인과 후포에는 서암공파(書巖公派)인 배문적의 11세손 배덕문(裵德文)의 후손이 살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대황리 견동에는 정절공파(貞節公派)인 배무적의 6세손 배극렴(裵克廉)의 13세손 배혁(裵赫)의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2010년 6월 말 기준으로, 경상북도 성주의 성주 배씨는 성주읍 대황리 집성촌에 32호가 있고, 월항면 보암리에 56호가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 산72-3에 경상북도 기념물 성주 옥성리 의열각(星州玉星里義烈閣)이 있다. 일본에 저항하다가 자결한 이경환(李慶煥)[1902~1929] 의사(義士)와 남편을 따라 자결한 부인 성주 배씨의 충절(忠節)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경환 의사는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교토[京都]를 방문했을 때 조선 침략의 부당성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철폐를 요구하는 직소장(直訴狀)을 제출하려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갖은 고통을 겪은 뒤 귀국하였다. 1929년 11월 빼앗긴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탄식하며 목을 매 자결했고, 부인 성주 배씨도 남편이 죽은 지 3일 만에 뒤따라 자결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