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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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輳 |
영어공식명칭 | Gim Ju |
이칭/별칭 | 지원(志遠),응원(應遠),운암(雲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나 |
출생 시기/일시 | 1564년 - 김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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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김주 사마시에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김주 문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0년 - 김주 낙향 |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김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94년 - 김주 덕천서원에 배향 |
출생지 | 김주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
거주|이주지 | 김주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
묘소|단소 | 김주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
성격 | 문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해평 |
대표 관직|경력 | 공조좌랑|예조정랑 |
[정의]
조선 시대 성주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지원(志遠)·응원(應遠), 호는 운암(雲巖). 김수(金洙)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계희(金季熙)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김경(金璟)이다. 아버지는 김응곤(金應袞)이고, 어머니는 안강 노씨(安康盧氏) 노홍도(盧弘道)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주(金輳)[1564~1636]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기렁골에서 태어나 살았다. 주로 인조 때에 활동한 문신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1548~1615]의 제자이며, 성주에서 정구와 김우옹을 중심으로 형성된 강안학파(江岸學派)의 일원이다. 충절(忠節)보다는 도학(道學)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1605년(선조 3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에 광해군의 폭정을 비판하고 정인홍(鄭仁弘)[1535~1623]을 배척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 성주 별시에서 여탁(呂悼)과 함께 선발되어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하였다. 공조좌랑(工曹佐郞), 예조정랑(禮曹正郞), 무안현감 등의 벼슬을 하였다. 1630년(인조 8)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때는 거문고 하나만 가지고 갈 정도로 청렴하였다고 한다. 김우옹이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때에 함께 참여하였다.
[학문과 저술]
『운암문집(雲巖文集)』 4권 2책이 있다. 1914년 8세손 김병훈(金秉勳)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류도헌(柳道獻)의 서(序)가 있고, 권말에 장승택(張升澤)의 서(敍)와 김병훈의 발(跋)이 있다. 권1에 시 41수가 있고, 권2에 소(疏)와 표(表)·서(序)·찬(贊)·축문 등이 있고, 권3과 권4에 행적·행장·묘갈명·묘지명 등이 있다. 권2 소에서 「청토인홍소(請討仁弘疏)」는 정인홍의 탄핵을 요구하는 내용이고, 「청죄박이립소(請罪朴而立疏)」는 1610년(광해군 2) 정구를 무함(誣陷)한 박이립(朴而立)의 탄핵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책의 「전시대책(殿試對策)」에서는 나라의 중흥을 위해 임금이 수신해야 하고, 좋은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풍우책(風雨策)」에서는 임금이 덕을 닦고 인정(仁政)을 베풀면, 음양 역시 조화를 이루어서 재앙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묘소]
묘는 성주 운곡 나복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구인봉(九印峯)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94년(정조 18) 김관석(金關石)·김천택(金天澤)·김주·김즙(金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덕천서원(德泉書院)을 창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