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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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應祥 |
영어공식명칭 | Baek Eungsang |
이칭/별칭 | 성서(聖瑞),여재(旅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구율 |
출생 시기/일시 | 1565년 - 백응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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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백응상 이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수원 |
대표 관직 | 예빈시 부정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지역에서 거주한 문신.
[가계]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성서(聖瑞), 호는 여재(旅齋). 증조할아버지는 백인웅(白仁雄)이고, 아버지는 백홍민(白洪民)이다.
[활동 사항]
백응상(白應祥)[1565~?]은 선조(宣祖) 때 예빈시 부정(禮賓寺副正)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산(錦山)에서 창의(倡義)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께 왜적에게 죽임을 당한 후, 왜적과 한 하늘 밑에서 살 수 없다고 맹세하고 재종 숙부(再從叔父) 백수종(白守宗)과 고종(姑從) 백후(白厚)와 더불어 전장에 나아가 왜적에 대항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경기도 포천에서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리 탕실로 이주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 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