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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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悤言 |
영어공식명칭 | I Chong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성주 지역의 호족이자 벽진 이씨의 시조.
[개설]
벽진 이씨(碧珍李氏)는 성주 이씨(星州李氏), 성산 이씨(星山李氏), 광평 이씨(廣平李氏), 경산 이씨(京山李氏), 가리 이씨(加利李氏)와 함께 성주 6리(李)로 불리는 성씨이다.
[가계]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도운 공로로 벽진군의 장군에 임명된 벽진 이씨의 시조이다. 선대는 알려지지 않았고, 이달행(李達行)과 이영(李永)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총언(李悤言)[858~938]은 신라 말~고려 초, 현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 있던 벽진군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호족이었다. 고려 통일 전쟁기의 혼란스러운 시국에도 성주(城主)로서 벽진군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고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당시 벽진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을 놓고 후백제와 쟁패 중이던 고려 태조 왕건의 귀부(歸附)[스스로 와서 복종함] 권유를 따름으로써 고려의 통일 완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정확한 귀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918년과 통일을 완성한 936년 사이로 추정된다.
왕건은 공을 세운 이총언을 벽진군 장군으로 임명하며 후하게 대우했고, 대광(大匡) 사도귀(思道貴)의 딸과 이총언의 둘째 아들인 이영과의 혼인도 주선하였다. 또한 이총언에게 이웃 읍(邑)의 정호(丁戶) 229호를 더 하사하고, 충주(忠州)[충청북도 충주]·원주(原州)[강원도 원주]·광주(廣州)[경기도 광주]·죽주(竹州)[경기도 안성]·제주(堤州)[충청북도 제천] 창고의 곡식 2,200석과 소금 1,785석을 주었다고 한다. 938년에 81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