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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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필기 |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보(聖甫). 원주목사 영가군(永嘉君) 권우(權愚)의 장남이며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의 증손자이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군수 한승우의 딸이며, 후배는 여산송씨로 통례 송승은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배웠고, 성수침(成守琛), 이문건(李文楗) 등과 더불어 도학에 전념하였다. 그는 경전 및 『소학(小學)』 등을 필사하여 조석으로 자제들을 가르쳤는데, 당시 사람들이 권굉의 학행이 높아 출사를 권하였으나 스승인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이 기묘사화(1519년)를 당하자 일체 과거시험에 나가지 않았다. 뒤에 그 학덕을 높이 여겨 영의정 상진(尙震)이 글을 보내 출사할 것을 권해도 듣지 않았다.
권굉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청계산 자락에 있는 안동권씨 묘역에 있다.
1568년(선조 1)에 사망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아들 권징이 공조판서가 되자 다시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 화성군(花城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