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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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牛見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정재윤 |
개정 시기/일시 | 757년 12월 - 우견현에서 목우현으로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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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407년 - 정해현과 여미현을 해미현으로 통합 |
개정 시기/일시 | 1914년 - 해미현을 지성면으로 개정 |
개정 시기/일시 | 1917년 - 지성면에서 해미면으로 개정 |
관할 지역 | 우견현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
관할 지역 | 우견현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
관할 지역 | 우견현 -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
[정의]
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 지역에는 기군과 그 영현으로 지육현(知六縣), 성대혜현(省大兮縣)의 1군 2현이 설치되었다. 반면, 현재 서산시와 홍성군이 인접한 해미면·고북면 일대를 중심으로 마시산군(馬尸山郡)의 영현으로 우견현(牛見縣)이 설치되어 해상 루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는 사비 천도 직후인 6세기 중반 무렵 기존의 담로제를 개편하여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해미면·고북면 일대에는 유력한 세력이 존재하였으며, 이를 우견현으로 편제하여 중앙의 통치를 구현시키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이산군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산군(伊山郡)은 본래 백제 마시산군(馬尸山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이 둘이었다. 목우현(目牛縣)은 본래 백제 우견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금무현(今武縣)은 본래 백제 금물현(今勿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덕풍현(德豊縣)이다.”
[내용]
우견현의 치소(治所)나 통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이를 관할하는 마시산군이 예산군 덕산면 일대로 추정됨을 고려하면, 우견현은 마시산군 서남쪽의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해미면 일대에는 반양리 산성(磻陽里山城), 웅소성리 산성(雄梳城里山城) 등이 위치하고 있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시기나 성격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변천]
삼국 시대 백제의 우견현에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웅주 이산군의 속현으로 목우현을 두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광도(楊廣道) 홍주(洪州)의 영현에 속했으며 고구현(高丘縣)과 정해현(貞海縣)으로 나뉘었다. 이후 고구현은 폐치되고 조선 시대인 1407년(태종 7)에 정해현은 여미현과 통합하여 서산군 해미현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서산군 지성면(枳城面)으로 고쳤다가 1917년 현재의 행정 구역 명칭인 해미면으로 개칭되었다.
[의의와 평가]
우견현은 지금의 서산시 일대에 존재한 기군과는 별도로 해미면·고북면 일대에 토착 세력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준다. 이 세력은 해미 일대를 중심으로 해상 활동과 관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