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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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興亭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왕기,윤용혁 |
현 소재지 | 해미 안흥정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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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객관(客館)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객관(客館) 터.
[위치]
안흥정(海美安興亭)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마다 다르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마도[현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그 위치가 “해미현(海美縣)의 동쪽 11리” 지점이라고 나와 있다. 이 중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한 위치에 건물 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자료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 안흥정의 추정 건물 터는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한서대학교 부근의 신선봉 능선 정상부에 위치한다.
[변천]
안흥정은 고려 시대 서산 지역에서 사신과 국가 공무 등으로 항해하는 이들의 교통 편의를 돕기 위하여 건립한 객관이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077년(문종 31)에 세워진 객관이다. 당시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묵었던 곳인데, 본래 보령에 있던 것을 폐하고 해미현(海美縣)에 건립하였다. 안흥정 건물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고려 시대 와류와 청자편, 토기편 이외에 조선 시대 백자편이나 조선 후기의 와류도 다수 확인된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안흥정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후에도 다른 용도로 계속 건물이 유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안흥정(安興亭)의 훼철 시기는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우나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지금은 정(亭)은 훼철되고 터만 남았다”고 적혀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안흥정 건물 터로 추정되는 곳에는 2단의 축대와 1,650.9㎡[500평] 정도의 평탄 대지에 초석과 와편 등이 산포하고 있어 이를 통해 당시 건물의 규모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해미의 동쪽 연안에 객관으로서 안흥정이 마련된 것은 이 지역이 태안반도를 통과하기 전 정박처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안반도의 서쪽은 ‘난행량(難行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항행이 어려운 난코스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태안반도의 안쪽에 정박처를 마련하여 기상의 변화와 물자의 공급, 휴식 등을 취하도록 조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