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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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현숙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개설]
청동기 시대는 인류의 물질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연모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로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즉 청동기 시대는 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대로서 구석기 시대 및 신석기 시대와 함께 선사 시대로 분류되며 조사를 통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주거와 분묘, 생산 유구 등의 유물과 유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합금술과 성분 분석 결과에 의하여 시베리아 청동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많다.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300년경으로 편년하는데, 시대의 상한은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던 토기로 분류되는 각목돌대문토기 때문에 더 올려볼 수도 있다. 청동기 시대의 특징으로는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시작, 민무늬 토기와 청동기의 등장, 간석기의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청동기가 표지적인 유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청동기 시대 후기나 초기 철기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거지는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주로 입지하고 있다. 형태는 주거지의 조영 시기와 평면 형태에 따라 전기의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의 평면 형태에 위석판석식·위석식·무시설식 노지를 사용하는 형태[미사리·가락동·역삼동·흔암리 유형]와 후기의 방형 또는 원형의 평면 형태에 구덩이 양쪽 끝에 원형의 작은 구덩이를 갖춘 타원형 구덩이 형태[송국리 유형]로 구분할 수 있다. 무덤은 고인돌·석관묘[돌널무덤]·옹관묘[독무덤]·석개토광묘[움무덤]가 대표적이다.
청동기 시대 유적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당시의 밭과 논의 유구도 조사되었는데, 밭은 이랑과 고랑이 뚜렷하고 논은 규모가 작지만 저수 시설과 물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그리고 볍씨와 조·수수·기장·보리와 같은 곡물이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의 생업 경제는 수렵·채집과 더불어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대표적인 유물은 민무늬 토기, 간석기, 청동기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살림의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날이 날카로운 간석기가 널리 발달하였다. 토기는 바탕흙에 굵은 모래나 할석을 섞어서 구운 민무늬 토기가 중심을 이루며, 용도에 따라 호·옹·심발·발·완·대부발 등의 다양한 기종으로 제작되었다. 석기는 돌칼·돌살촉·돌도끼 등 간석기가 주로 사용되었다.
청동기는 대체적으로 청동 단추와 청동 손칼 등 주조가 간단한 청동 유물을 만든 시기와 동검과 같은 청동 무기·공구 등을 제작하던 시기로 구분하는데, 표지 유물은 비파형 동검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청동기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다뉴조문경[거친무늬 거울]과 다뉴세문경[잔무늬 거울]도 있다.
[서산 지역의 유적]
서산 지역은 동쪽과 서쪽 외곽에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중심으로 주변에 넓은 구릉 지대와 하천이 발달되어 있어 선사 시대부터 매우 양호한 인문 환경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은 주거지와 고인돌, 그리고 유물 산포지로 구분된다. 특히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주거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기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서산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문화 형성 및 발달의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주거지는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휴암리, 음암면 부장리·유계리, 운산면 갈산리, 고북면 신송리, 대산읍 대로리 등에서 발굴 조사 되었다. 조사된 유적은 기지리 유적의 주거지 110기와 수혈유구 41기, 서산 휴암리 선사 유적지의 주거지 11기, 부장리 유적의 주거지 34기와 수혈유구 8기, 갈산리 유적의 주거지 8기와 수혈유구 1기, 신송리 유적의 주거지 17기와 수혈유구 3기 등이다.
조사된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길이 20m 내외의 세장방형 주거지에서부터 지름 3~5m 내외의 원형 주거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기지리 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 시대 전기의 세장방형 주거지에서는 공열문 토기와 단사선문이 시문된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한강 유역에서 남쪽으로 전파된 서북 지역의 주거 문화 요소와 동북 지역 주거 문화 요소가 함께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휴암리 유적에서 조사된 주거지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인 송국리형 문화의 초기적 형태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서산시를 포함한 서해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주거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 자료이기도 하다.
고인돌은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와 남정리에 분포하고 있는데, 둔당리에서는 둔당리 1구·2구 두 곳에서 각각 한기씩 확인되었고 남정리에서도 두 곳에서 확인되었으며 서로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의 다른 유적에 비해 고인돌을 비롯한 무덤 유적은 조사가 많이 되지 않았다. 추후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될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 산포지는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 운산면 소중리, 음암면 상홍리 등에서 확인되는데, 분포 지역의 지형 현황으로 미루어 볼 때 서산시 전역에 걸쳐서 분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선돌은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가구리·신송리 탑동·장요리 3구·용암리, 온석동에서 확인되었다. 선돌의 경우는 구체적인 축조 연대는 가늠할 수 없지만 비교적 많은 수가 확인되어 주변 청동기 시대 유적과의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서산 지역 유적의 특징]
서산 지역은 충청남도 북서부의 반도에 자리하고 있다. 지형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고, 전체적으로 낮은 구릉성 산지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지리적 조건은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좋은 조건이 되며, 따라서 다양한 인문 환경이 조성되어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 유적에 비해 청동기 시대 유적의 사례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특징은 서산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시대적인 특징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구석기 시대 유적은 유물 산포지로만 확인되고 있는 상태이지만,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주거지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확인될 뿐만 아니라, 관련 유물로서 토기와 석기가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은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문화 변천상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이러한 유적과 유물들은 선사 시대 서산 지역의 문화상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선사 문화에 있어서 서산 지역의 중요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