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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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漁業組合 |
영어음역 | Eoeopjohap |
영어의미역 | Fisheries Cooperative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지수걸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어업 조합.
[개설]
『충청남도도세일반(忠淸南道道勢一斑)』 민적(民籍) 자료를 참고하면 서산군 바닷가에 인접한 면에 많은 어업 인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라는 별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서산군에는 소규모의 포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이 발달하였다. 1908년 서산군의 어업자는 71호에 238명, 태안군은 117호에 375명, 해미군은 59호에 158명 등이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 서산군 전체 인구 14만 5841명 가운데 어업자는 248명, 어업 노동자는 1,303명이었는데, 당시 충청남도 전체의 어업주는 707명, 어업 노동자는 2,736명이었다. 1934년 한 해 동안 서산군의 해산물 및 가공품 생산액은 48만 4000여 원, 어업 종사자도 2만 5000여 명에 달하였다. 서산 인근 바다와 갯벌에서는 대구, 조기, 민어, 조개, 도미, 가오리 등을 비롯하여 해삼, 새우, 굴, 김 등이 많이 잡히거나 채집되었다.
[설립 목적]
1912년 2월 총독부는 조선의 수자원을 약탈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수산조합규칙」과 「어업조합규칙」을 발포하였다. 1920년대 들어 군이나 면, 혹은 동리를 단위로 어업조합이 우후죽순처럼 결성되었으며, 뒤이어 도나 전국 단위 연합회도 구성되었다. 1937년 5월 조선어업조합중앙회가 결성되었으며, 1940년 1월 충남어업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조선어업조합중앙회는 전시 어업용 물자 배급과 더불어 이른바 ‘수산 보국’에 앞장섰다.
[변천]
서산 지역 어업조합은 1920년에 설립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서산군지』[1927]에 따르면 서산 지역에는 1920년대 농회, 여자잠업전습소, 축산동업조합, 어업조합, 삼림조합 등의 산업 단체가 존재했다고 하여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나 구체적 내용을 전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27년 12월 8일 『중외일보』 기사에 따르면 서산에는 안흥어업조합만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30년대 후반 태안군 소원면 등 다른 면에서도 면 단위 어업조합이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서산 지역의 면이나 포구 단위의 어업조합도 다른 지역의 조합들과 마찬가지로 어업에 대한 관리 감독, 생산 독려, 가공 방법 지도, 판로 개척 등의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한 활동 내용은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서산 지역은 충청남도 지역에서 어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으므로 어업조합도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서산 지역은 1930년대 후반 들어 양식업과 가공업이 발달하면서 어업조합의 규모도 점차 커졌다. 1935년 12월 충남수산회 서산지부가 서산군청에서 어리굴젓 공판 활동을 두 차례 벌였다는 신문 기사로 미루어 보아 어업조합과는 별개로 수산회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