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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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賢里出土金銅如來立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9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여성민 |
출토|발굴 시기/일시 | 1968년 4월 -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 발견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약 10m 떨어진 밭에서 정장옥이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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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6월 - 횡류되어 행방을 모르다가 재수습됨 |
현 소장처 |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
출토|발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93 |
성격 | 불상|금동 여래 입상 |
재질 | 금동 |
크기(높이) | 7.5㎝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인근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 금동 여래 입상.
[개설]
용현리 출토 금동여래입상(龍賢里出土金銅如來立像)은 1968년 4월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普願寺址出土金銅如來立像)이 발견된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약 10m 떨어진 밭에서 출토되었다. 장유성 소유의 밭을 경작하던 정장옥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후 횡류(橫流)되어 행방을 모르다가 1968년 6월에 재수습되어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보존되고 있다.
[형태]
대좌(臺座) 위에 정면으로 직립한 소상(小像)으로, 발견 당시에 금색이 대부분 탈락(脫落)된 상태였다. 규모를 살펴보면 불상의 높이는 7.5㎝, 어깨 너비는 1.5㎝, 대좌 지름은 3.3㎝, 대좌 높이는 2㎝이다. 두발은 녹이 슬어서 나발(螺髮)이었는지 또는 소발(素髮)이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육계(肉髻)는 작으나 뚜렷하게 조각되었다. 귀의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어깨까지 드리우고 있는데 오른쪽 귀는 파손되었다. 상호는 똑바로 앞을 향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둥근 형태이다. 목에 삼도(三道)는 표현하지 않았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식(通肩式)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위로 세우고 왼손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아래로 내린 여원시무외인(與願施無畏印)으로 여래상(如來像)의 수인을 하였다. 양발은 나족(裸足)으로 발가락을 모아 대좌(臺座) 위에 정연하게 놓아 직립 자세를 취하였는데 표현이 유려(流麗)한 편이다. 측면과 후면은 문양이 생략되었다. 후면은 ‘요(凹)’자 형태로 홈이 파여져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돌기가 있어 원래는 광배(光背)가 부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대좌는 8각형에 둥근 띠를 둘러 2층을 형성하고, 그 위에 다시 둥근 형태의 대를 만들어 불상을 세웠다.
[특징]
몸에 비해서 머리 부분을 약간 크게 조성한 점, 그리고 세부 표현 기법과 대좌의 형태 등에서 통일 신라 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만 불상의 양 볼이 비교적 홀쭉하게 표현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 불상의 대부분이 양 볼을 풍만하게 표현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통일 신라 시대 금동 여래 입상은 유례가 드문 편이다. 용현리 출토 금동여래입상은 이미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龜尾善山邑金銅如來立像)[국보 제182호], 충청남도 금산군 음지리 출토 금동여래입상과 함께 통일 신라 시대 금동 여래 입상의 양식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