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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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澤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큰말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731년 -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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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51년 - 이택 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19년 - 이택 졸 |
현 소재지 | 이택 신도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
성격 | 신도비 |
관련 인물 | 이택 |
크기(높이,너비,두께) | 234㎝[비신 높이]|103㎝[비신 너비]|44㎝[비신 두께]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택(李澤)을 기리는 신도비.
[개설]
이택[1651~1719]은 정종(定宗)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후손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택 신도비는 1731년(영조 7)에 건립되었다.
[위치]
운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여미리 마을회관에 이른다. 여기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 1㎞ 떨어진 곳에 있는 여미리 큰말마을의 중앙에 이택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다.
[형태]
이택 신도비는 장방형의 화강암 기단석[높이 90㎝, 너비 166㎝, 두께 108㎝] 위에 비신[높이 234㎝, 너비 103㎝, 두께 44㎝]을 올렸다. 옥개석[높이 104㎝, 너비 155㎝, 두께 65㎝]은 반전이 강하며 기왓골 무늬가 뚜렷하다. 비신의 사면에 이택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금석문]
비문은 윤봉구(尹鳳九)[1681~1767]가 짓고 글씨는 김진상(金鎭商)[1684~1755]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조상(趙尙)이 썼다. 이들은 모두 노론계 인물로, 특히 김진상은 글씨에 뛰어나 많은 비문을 남겼다. 이택의 실기인 『사주록(泗洲錄)』에 이 신도비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원래 윤봉구가 지었던 글이 불에 타 당시 문집을 구성할 때 아들 이의천(李倚天)과 가인(家人)들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다.
[현황]
이택 신도비 뒤편으로 약 100m 지점 남향 경사면에 이택의 묘소와 1728년(영조 4)에 건립된 묘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이택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이며, 당시 서산 지역 전주 이씨의 사회적 위상과 교유 관계를 보여 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