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21
한자 崔孝敏-崔萬澄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37년연표보기 - 최효민 명정
건립 시기/일시 1831년연표보기 - 최만징 명정
현 소재지 최효민·최만징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
성격 정려
양식 도리 양식|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2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효민(崔孝敏)최만징(崔萬澄)의 정려.

[개설]

서산 지역의 완산 최씨(完山崔氏)는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후예들로서, 최효민최유경의 11세손이다. 최효민은 부친이 병이 들자 잠시도 의대를 풀지 않고 매일 안색을 살피는 등 백방으로 간호에 힘썼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법을 따라 3년간 시묘(侍墓)를 마쳤다. 구전에 의하면 시묘살이 중 여막에 큰 호랑이가 나타났는데 효자의 곡성을 듣고 감복하여 물러갔다고 한다.

[위치]

서산시 음암면 소재지 음암우체국 바로 동편에 최효민·최만징 정려(崔孝敏·崔萬澄旌閭)가 자리하고 있다.

[변천]

최효민·최만징 정려는 중추부사를 지낸 최효민최효민의 둘째 아들 최만징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조선 시대 예조에서 편찬한 『효행등제등록(孝行等第謄錄)』에 의하면, 1729년(영조 5)과 1736년(영조 12) 사이의 효행 등제 인물 가운데 서산의 양인(良人) 최효민이 정려질로 등재되어 있다. 또한 『순조실록(純祖實錄)』 1831년(순조 31) 기사에 의하면, “효행과 열행을 한 유생들에게 포상하기를 예조에서 복계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중 서산의 사인(士人) 최만징이 효행으로 증직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효민은 1737년(영조 13)에, 아들 최만징은 1831년에 명정을 받았다.

[형태]

장방형의 시멘트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남향 건물이다. 8각 주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올렸다. 전면은 홍살로 처리하였으며, 양 측면과 후면은 시멘트로 벽을 쌓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에 도리 양식의 건물이다.

[현황]

2011년 현재 최효민·최만징 정려 내부 현판에는 ‘효자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최효민지문-숭정기원후세재정사년오월십이일명정(孝子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崔孝敏之門-崇禎紀元後歲在丁巳年五月十二日命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들 최만징은 ‘효자고학생최만징지문-도광십일년신묘칠월십사일명정(孝子故學生崔萬澄之門-道光十一年辛卯七月十四日命旌)’이라고 되어 있다. 좌측 벽에는 1850년(철종 1) 이우현(李禹鉉)이 효행 사실을 기록한 「완산최씨양세효자정려기(完山崔氏兩世孝子旌閭記)」가 걸려 있다. 주위는 돌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대문을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최효민·최만징 정려는 서산 지역에서 양세 효자로 상징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예조에서 편찬한 『효행등제등록』과 『순조실록』 등 여러 기록에도 실려 있어 그 역사와 의미가 깊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5.04 내용 수정 변천부분 문장 윤문
2012.05.03 오류 수정 전주 최씨->완산 최씨로 수정함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