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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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亭子里立石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중단 시기/일시 | 1970년대 초 -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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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 |
성격 | 민간 신앙|개인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초 |
신당/신체 | 선돌 2기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
[개설]
정자리 선돌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선돌 앞에서 가정의 무탈함과 안녕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는 2기의 선돌이 있다. 이 선돌은 마을에서 신성시하여 함부로 건드리는 것을 금기시했으며, 매년 정초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 다만, 선돌제는 동제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해마다 선돌 인근에 거주하는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모셨다. 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선돌제를 지낸 사람은 고 엄대근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0년대 초 그가 작고한 뒤로 사실상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정자리 선돌의 연원은 알 수 없다. 선돌의 기원과 관련된 유래담이나 전설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마을에 위치한 대부분의 선돌이 풍수설에 따른 비보(裨補) 관념에 의거하여 건립되었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조선 후기 풍수설이 민간에 널리 퍼지면서 세워진 선돌의 하나로 추정될 뿐이다. 즉 애당초 마을의 허한 방위를 막을 목적으로 선돌을 세웠거나 화재막이 또는 음기를 다스리기 위해 건립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선돌은 구성원들에 의해 으레 수호신으로 추앙을 받기도 하지만 마을에 따라서는 개별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사례도 산견되는데, 정자리 선돌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선돌제는 1970년대 제의가 중단된 뒤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약 20여 년 전에 마을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자 일부 주민 가운데 다시 선돌제를 지내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호응이 없어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와 경계를 이루는 삼포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도로변 삼거리에 선돌이 있다. 이 선돌은 한 쌍이 나란히 서 자리했으나 1기는 쓰러진 채 흙속에 묻혀 버려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선돌의 형태는 위가 좁고 밑 부분이 넓은 마름모꼴 형태이며 크기는 높이 119㎝, 폭 62㎝, 두께 52㎝이다. 묻힌 선돌은 선돌을 세웠던 받침대만 보이는데, 1990년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높이 160㎝, 폭 43㎝, 두께 35㎝라고 한다. 삼포초등학교가 개교할 당시 교정으로 선돌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너무 무거워서 본래 있던 자리에 방치되고 있다.
[절차]
선돌제는 오래 전에 제의가 중단되어 자세한 절차는 파악하기 어렵다. 단지 예전에 제를 지낼 때는 반드시 집에서 빚은 술을 올렸고, 기타 과일 등을 진설했다고 한다. 또한 축문이 존재했다는 마을 주민의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유교식 절차에 의거하여 제를 거행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선돌제를 지냈던 엄대근이 작고할 당시 자신의 아들에게 “절대 선돌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