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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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野 |
영어공식명칭 | Plain |
이칭/별칭 | 들판,벌판,평원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서 높이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들판.
[개설]
평야는 들판 또는 벌판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평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평야는 생성 원인에 따라 주변을 흐르는 하천의 퇴적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평야 또는 충적평야가 있고, 하천의 침식 작용에 의해 지표면이 깎이면서 만들어진 침식평야가 있다. 시흥시는 높은 산지의 발달이 뚜렷하지 않지만, 서해로 유입하는 크고 작은 하천이 잘 발달해 있어 침식평야보다 퇴적평야가 많다.
시흥시에 발달한 평야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산지 사이에 이미 형성된 소하천(小河川)의 골짜기를 따라 좁고 길게 퇴적되어 만들어진 곡저평야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해안의 개펄을 매립하거나 개간하여 조성한 간척평야이다. 시흥 지역은 일찍부터 구릉성 산지의 사이를 흐르는 강가에 형성된 넓은 평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곡저평야와 간척평야]
골짜기에 형성된 곡저평야는 보통천과 은행천 주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보통천과 은행천의 중류 및 하류에 발달한 곡저평야는 두 하천의 물길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이들 두 하천이 만나는 매화동 일대에서는 폭이 1.7㎞에 달하는 넓은 들판이 자리한다. 간빙기(間氷期) 이후 서해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침식 기준면이 올라가면서 지금과 같이 모래와 점토로 이루어진 평탄한 골짜기의 충적지가 형성된 것이다. 매화동 및 은행동 일대의 곡저평야는 농지 개간과 관개 수로 정비를 통해 바둑판 모양의 농경지로 조성되었으며, 대부분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일부 저습지에서는 연을 재배한다.
해안가를 매립하여 만든 간척평야는 시흥시의 중서부를 흐르는 보통천과 은행천의 하구에 해당하는 월곶동과 포동 일대를 비롯하여 시화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한 정왕동 일대에서 잘 나타난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개펄이었기에 일찍부터 염전으로 이용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하천 하구의 개펄과 염전을 매립하거나 개간하여 본격적으로 평야가 조성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간척평야는 면적이 약 8㎢에 이를 정도로 넓다. 간척 사업의 시행으로 어업이나 제염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새롭게 조성된 농경지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그 규모를 확장해 나가기도 하였다. 간척평야에서는 대부분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평야의 가장자리 일부와 월곶동 일대는 택지 개발 사업의 시행으로 토지 이용이 변화하기도 하였다. 과거 육지와 오이도 사이의 개펄이었던 정왕동 일대에는 넓은 간척평야가 형성되었지만, 시화국가산업단지의 건설로 지금은 대부분 시가지가 들어서 있다.
시흥시의 평야는 대부분 '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매화동과 도창동의 호조벌만 '벌'로 불린다. 들로는 매화동의 호조방죽들·갯벌방죽들, 은행동의 찬우물방죽들, 안현동의 낙선내들·앞방죽들, 도창동의 강창방죽들, 하상동의 역방죽들·하직골방죽들, 하중동의 하중리들, 금이동의 월미방죽들, 장현동의 서재방죽들, 거모동의 거모들, 죽율동의 안방죽들 등이 있다. 평야의 이름에 방죽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시흥시의 하천변에서 배후 습지의 형태로 만들어진 농경지가 많음을 보여준다.
[토지 이용]
평야는 대체로 농경지로 이용되며, 시흥시에서는 논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래 들어 대도시 주변 지역에서는 기존의 논이 시설 재배 지역으로 전용되면서 근교농업이 발달하는데, 시흥시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지만 뚜렷하게 나타나는 정도는 아니다.
시흥시에서는 2016년 현재 논의 면적이 10.01㎢로 도시 전체 면적 135.79㎢의 약 7.4%를 차지한다. 논의 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밭의 면적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다. 통계상으로 논은 하중동, 매화동, 거모동, 월곶동, 방산동, 도창동, 과림동, 금이동 등지에 비교적 넓게 분포한다. 하지만 도시화의 진행과 더불어 신규 택지 개발 사업, 도로 건설, 시가지 건설 등이 진행됨에 따라 논의 면적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