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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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重林洞 |
영어공식명칭 | Jungnim-d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우석 |
제정 시기/일시 | 1914년 - 인천부 황등천면 중림리에서 불아위·목과동·탄평 등과 함께 과림리로 통합되어 부천군 소래면에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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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시기/일시 | 1973년 7월 - 부천군 소래면에서 시흥군 소래면으로 편입 |
시행 시기/일시 | 1980년 - 시흥군 소래면에서 시흥군 소래읍으로 승격 |
시행 시기/일시 | 1989년 - 시흥군 소래읍·수암면·군자면이 시흥시로 승격 |
개정 시기/일시 | 1991년 9월 - 시흥시 중림출장소에서 시흥시 중림동으로 승격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1월 - 시흥시 중림동에서 시흥시 과림동으로 명칭 변경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의 옛 지명.
[개설]
중림동은 신안 주씨(新安朱氏)와 청주 한씨(淸州韓氏) 및 여흥 민씨(驪興閔氏)의 오랜 세거지다. 마을 서쪽 지역을 ‘안말’, 동쪽 지역을 ‘아랫말’, 중앙을 ‘가운뎃말’이라 각각 부르고 있는데, 특히 안말은 조선시대 중림역(重林驛)이 있었던 곳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인천부 황등천면 중림리는 인천부 관아에서 35리[약 13.8㎞] 지점에 있던 마을로, 종육품(從六品)의 찰방(察訪)이 파견되어 여러 속역(屬驛)을 거느렸던 중림역이 있었을 만큼 번창하던 곳이었다. 중림이라는 이름은 숲이 우거지고 나무와 산이 많았던 마을이라 붙여졌다.
[관련 기록]
1842~1843년경에 편찬된 『경기지(京畿誌』 「인천부읍지(仁川府邑誌)」 황등천면에는 지금의 시흥시 과림동 지역인 목과동[모갈]·각하리·중림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변천]
중림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조치로 인해 불아위(佛阿慰)[부라위], 목과동, 탄평(炭坪)[숯두루지] 등과 함께 과림리로 통합되어 부천군 소래면에 편입되었다. 과림(果林)은 목과(木果)와 중림(重林)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광복 이후에는 1973년 7월 소래면은 부천군에서 시흥군으로 편입되고, 1980년 소래면에서 소래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소래읍과 수암면·군자면이 합쳐져 시흥시로 승격되고, 과림리가 행정동인 매화동에 편입되었다. 2년 후인 1991년 매화동이 무지동과 과림동으로 분리되어 중림출장소가 설치되었고, 그해 9월 중림출장소가 시흥시 중림동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2년 중림동은 다시 과림동으로 동 이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