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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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基 |
영어공식명칭 | Lee Hangee |
이칭/별칭 | 상오재(尙五齋),승언(承彦)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혁 |
출생 시기/일시 | 1945년 - 이한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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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5~1988년 - 이한기 『시흥군지』 상임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88~1990년 - 이한기 『내 고장 안산』 상임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88~2002년 - 이한기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89~1996년 - 이한기 시흥시 향토사료실 상임위원 및 수원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조사편찬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1~1993년 - 이한기 『과천향토사』 상임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4~2002년 - 이한기 서울문화사학회 회원 및 이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5~1996년 - 이한기 화성축성200주년기념사업회 기획조사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6~2002년 - 이한기 시흥시 전통문화유산보호위원회 상임위원 및 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전문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9~2002년 - 이한기 안양시 지명위원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2002년 - 이한기 사망 |
출생지 |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 |
묘소 | 정왕공설묘지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산2-1,3 |
성격 | 향토사학자|자료 수집가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경력 | 시흥시 전통문화유산보호위원회 상임위원|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전문위원 |
[정의]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한 향토사학자 겸 자료 수집가.
[개설]
이한기(李漢基)[1945~2002]는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 227[지금의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하였다. 승언(承彦)이란 필명을 애용하여 본명보다 필명이 널리 알려졌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상오재(尙五齋), 필명은 승언. 아버지 이윤학(李潤鶴)과 어머니 김숙진(金淑鎭)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인 김세경과의 사이에 1남을 두었다.
[활동 사항]
이한기는 안산국민학교[지금의 안산초등학교]를 거쳐 안양중학교와 안양공업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방송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은 향토사학자로서 본격 입문하고, 경기도 시흥시를 중심으로 서울과 경기도 서남부 시·군 지역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 나갔다.
주요 경력으로 1988~1990년 『내고장 안산(安山)』 상임위원, 1988~2002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1989~1996년 수원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조사편찬부장, 1991~1993년 『과천향토사』 상임위원, 1994~2002년 서울문화사학회 회원 및 이사, 1995~1996년 화성축성200주년기념사업회 기획조사부장, 1996~2002년 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전문위원, 1999~2002년 안양시 지명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향토사 분야 경력은 시흥 지역에서 향토사 관련 상임위원·전문위원으로 자료 수집 및 분류, 논문 발표 및 향토지 발간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1985~1988년 『시흥군지』 상임위원, 1989~1996년 시흥시 향토사료실 상임위원, 1996~2002년 시흥시 전통문화유산보호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경력이 그것이다.
이한기는 몸에 밴 ‘기록 정신’, ‘자료 수집’ 그리고 ‘경기도 향토사’에 대한 애정을 끝없이 표현한 인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집광’, ‘자료에 미친 사람’,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등으로 회자되었다. 중학교 시절인 1950년대 후반부터 사망 전날까지 빼놓지 않고 약 45년에 걸쳐 A4 용지1~2장 분량의 일기를 써 왔다. 거기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생활, 친구, 학업에서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전망, 시흥시에서의 농사 일기, 인간 관계, 세세한 자료 수집 일지 등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 작성한 완벽한 자서전적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에 20년 가까운 공직 생활을 하면서 매일 빠짐없이 작성한 업무 일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한기는 향토사 분야 1차 사료, 행정 자료를 비롯한 근현대사의 주요 물증, 그리고 일상사와 관련된 의미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특히 10대 시절부터 차곡차곡 자료를 수집하면서 본인이 직접 소장한 자료를 29개 분야, 120여 개 중분류 항목으로 구분하였다. 수집 자료는 그의 사망 이후 1년 동안 분류 및 해제 작업을 실시한 결과, 총 1만 9836종에 4만 4915점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였다. 이는 학계에 「고 이한기 수집 자료 목록집」으로 보고되었고, 자료는 시흥시에서 데이터베이스 작업으로 이어져 활용되고 있다.
향토사 분야의 성과물, 논문 및 저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적으로 2002년 이전 시흥시에서 나온 향토사 발간물은 대부분 그의 아이디어와 발품에서 나왔을 정도이다.
[저술 및 작품]
이한기의 저서로 『시흥의 문화재와 유적』, 『시흥의 인물과 행적』, 『시흥의 역사와 행정』 등 10여 권이 있고, 향토사 관련 논문 수십 편을 남겼다. 이 외에도 상임위원을 맡아 발간 전체를 기획하면서 필자로 참가한 『시흥군지』상·하권과 『과천향토사』상·하권 등이 있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