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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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士敏 |
이칭/별칭 | 중눌(仲訥),쌍매당(雙梅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범호 |
출생 시기/일시 | 1531년 - 양사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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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89년 - 양사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08년 - 양사민 지계 서원에 배향 |
출생지 | 양사민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사당|배향지 | 지계 서원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지북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남원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눌(仲訥), 호는 쌍매당(雙梅堂). 증조할아버지는 귀암(龜岩) 양배(楊培), 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이며, 아버지는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을 지낸 양홍(楊洪)[1508~1564]이다. 어머니는 안극함(安克諴)의 딸 순흥 안씨이다.
[활동 사항]
양사민(楊士敏)[1531~1589]은 1531년(중종 26)에 순창 구미에서 출생하였다. 유희춘(柳希春)과 노진(盧稹)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하였고, 영오(穎悟)하여 많은 서적을 섭렵하여 통달하였으나 영리를 취하지는 않았다. 조정에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익위(翊衛)로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고, 만년에 쌍매당(雙梅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1788년(정조 12) 순창 유림들의 공의(公議)에 의해 지계 서원을 지어 양배, 이유겸, 양사민, 양응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였다. 양사민 묘비의 내용은 즉지헌(則止軒) 유언호(兪彦鎬)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