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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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蘆沙奇正鎭-出生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정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12월 - 「노사 기정진의 출생 설화」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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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일화|인물담|명당 발복담 |
주요 등장 인물 | 기재우|기정진|권씨 부인 |
모티프 유형 | 명당 발복 |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기정진 출생의 기이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노사 기정진의 출생 설화」는 순창이 배출한 대유학자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이 한쪽 눈을 잃게 된 일화이다. 기정진의 부친 기재우(奇在祐)가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에게 효를 행하기 위하여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를 찾아 부모를 모셨는데, 이곳이 순창 복흥의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이라는 명당이었다. ‘황앵탁목혈’이라는 묘지 풍수는 그 명당에 묫자리를 쓰면 3대손이 복을 받게 된다는 혈자리인데, 특히 3대 후손 중에서 한쪽 눈이 없는 아이가 태어나야 명당 발복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후 기정진을 얻었고, 태어나서 7일이 지난 후 하녀의 잘못으로 한쪽 눈을 잃게 되었는데, ‘황앵탁목혈’이어서 노사 선생이 한쪽 눈을 잃는다는 풍수와 일치하여 대유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인물담이자 명당 발복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255~256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노사 기정진 선생은 조선의 6대 성리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노사 선생은 1798년(정조 22) 6월 3일 유시(酉時)에 순창군 복흥방 조동[현재, 동산리]에서 아버지 기재우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기재우는 전남 장성의 하남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인 태온(太溫)에게 의지하여 살았다. 기재우는 부모도 없이 불행한 유년을 보냈으나 현실에 굴하지 않고 틈틈이 글을 읽었다. 『소학(小學)』을 읽으면서 부모에게 효행을 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자신이 효를 행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유골이나마 좋은 곳에 모시는 것임을 깨닫고 풍수지리를 공부하여 풍수에 통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의 유골을 모실 곳을 찾던 중 순창군 복흥에 대혈(大穴)이 많은 것을 알고 순창 복흥방의 조동으로 이사하였다. 기재우는 풍수지리학상 길지라고 하는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에 부모를 모시게 되었다. 이후 10년 후에 노사 기정진을 얻게 된 것이다.
기정진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 기재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하녀에게 “딸이냐, 사내냐”라고 물었다. 하녀는 “옥동자입니다.” 하였다. “아무런 탈이 없더냐?”라고 다시 묻자 “아무 탈이 없는 옥동자입니다.”라고 하녀가 대답했다. 이 말은 들은 기재우는 사랑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두문불출하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권씨 부인은 안절부절못하였다. 40이 넘어 아들을 낳았으니 칭찬을 받아 마땅한데 오히려 남편의 얼굴조차 볼 수 없으니 남편의 내심을 모르는 입장에서 권씨의 마음은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아들을 낳은 후 7일이 된 날 아침, 초이레에 삼신에 제사하기 위하여 방 청소를 하던 하녀는 그만 잘못하여 벽에 걸어 놓은 가락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아기의 눈에 떨어졌다. 아기가 죽을 듯이 울어대자 사랑방에서 두문불출하던 기재우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하녀는 거의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아기가 눈을 다쳤다고 하였다. 그러자 7일간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기재우는 사랑방 문을 박차고 뛰어 나오며 “이젠 됐다. 별일 없을 것이니 조용히 하거라.”라고는 희색이 만면하였다. 이 모습을 본 권씨 부인은 기가 막혔다. 두문불출하던 남편이 아기를 낳은 지 7일 만에 나와서는 눈을 다친 아기를 보고는 아무 일도 없으니 조용히 하라고 하니 어찌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친 아기를 부인 탓으로 돌리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기재우로서는 30년 고생하여 황앵탁목혈을 구하여 어머니께 효도하였다는 기쁨과, 그 결과로 한쪽 눈이 먼 자식을 얻었으니 그 이상 기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티프 분석]
「노사 기정진의 출생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발복’이다. 명당을 찾아 묫자리나 집터를 잡으면 후손이 번창하고 가문이 영광을 받게 된다는 풍수지리는 오랜 세월 동안 민간 신앙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높은 관직에 오르거나 명문가의 사람에 대한 뒷이야기에는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의 대유학자 기정진의 출생과 관련된 「노사 기정진의 출생 설화」도 ‘명당 발복’ 모티프에 기반하고 있다. 풍수를 공부한 기재우가 명당자리를 찾아 부모의 묘를 앉혔고, 이로 인해 노사 기정진이 대유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명당 발복담은 훌륭한 사람에 대한 신비성을 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