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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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學童-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 |
집필자 | 박정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2월 - 「학동의 한이 서린 바위」 『순창의 전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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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 |
성격 | 지명 유래담|경계담 |
주요 등장 인물 | 장원한 학동|시기심 있는 학동 |
모티프 유형 | 시기심이 부른 살인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에서 시루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학동의 한이 서린 바위」는 풍산면에 있는 시루봉에는 시기심과 질투에 눈먼 친구들에게 죽임을 당한 바위가 남아 있어서 장원봉이라고도 불린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2월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전설』의 148~149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이종진·장민욱 등이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에서 주민 류근호[남, 1934년 생]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순창군 아미산의 꼭대기에는 시루봉이라고 부르는 봉우리가 하나 있다. 봉우리의 모양이 아주 큰 시루를 딱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루봉은 삼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딱 한쪽 면으로만 오를 수 있게 되어 있다.
풍산면 상죽 마을 뒤에 서당 터라 하는 곳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풍산과 금과 쪽의 학동들이 모여 이 서당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서당에서 시험을 볼 때마다 장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학동들은 그 사람이 부럽기도 하였고 질투도 났다. 그중에서도 유독 질투심과 시기심이 많은 한 학동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도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번번이 장원을 하지 못하자 속이 매우 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에 이 사람을 그냥 두면 자신이 한 번도 장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루는 늘 장원을 하는 사람을 감언이설로 꾀어내어 시루봉으로 함께 놀러 가자고 하였다. 시루봉에 놀러간 친구들은 오랜만에 술 한 잔씩 돌려 먹으며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한참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지자 시기심을 가진 학동이 장원한 학동을 옆으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하는 척하며 그 학동을 발로 차서 밀어 버렸다. 장원한 학동은 바위 밑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 다른 친구들은 장원한 학동이 발을 헛디뎌 바위 밑으로 떨어진 줄로 알았다. 장원한 학동이 떨어지면서 뻘건 피를 흘렸는데, 아직도 시루봉 아래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장원한 사람의 한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하여 그 봉우리를 ‘장원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모티프 분석]
「학동의 한이 서린 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시기심이 부른 살인’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학동의 한이 서린 바위가 있는 봉우리라 하여 이름조차도 ‘장원봉’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주변의 서당 터와 관련하여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시기심과 질투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어찌되었든 경계해야 할 행위이다. 시기심과 질투가 불러올 화를 깨우쳐 주고자 전해 내려온 경계담이며, ‘장원봉’이라 불리게 된 연유를 보인다는 점에서 지명 유래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