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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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 |
영어공식명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진 |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전개.
[개설]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문학은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전문학은 구비문학, 한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순천의 구비문학]
순천 지역의 구비문학으로는 설화, 민요, 판소리가 있다.
순천 지역 설화로는 순천시 용당동의 봉우리 세 개가 이어진 삼산(三山)의 유래,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송광면 낙수리·상사면 미곡리 등에 부자(富者) 흥망의 전설을 담은 장자터[장작소]의 유래, 순천시 주암면 오산리 용지마을 앞 수퉁산의 용녀총 이야기, 임진왜란의 참상과 관련한 순천시 인제동 인제산(麟蹄山)의 피내골[피내또랑 또는 억만골] 지명 유래, 순천시 해룡면 앵무산(鸚鵡山)이 양미산(糧米山)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순신이 그곳에 노적가리를 쌓아 왜군을 물리쳤기 때문이라는 등의 지명 설화가 있다. 또, 후백제의 견훤(甄萱), 비범한 고운 최치원(崔致遠), 특정 성씨의 선조이자 장군이며 산신이 된 김총(金摠)과 박영규(朴英規),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 기행(奇行)과 이인(異人)의 면모를 지닌 이서구(李書九)·임백호(林白湖)·박문수(朴文秀), 순천 낙안읍성 축조와 관련한 장수 임경업(林慶業), 제석산 또는 불재[범박골]와 관련한 역적 김자점(金自點)의 출생, 순천시 서면 학구리 출신으로 한말(韓末) 의병장으로 활동한 정몽굴 등의 인물 설화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여 모친의 외도(外道)를 허용하는 효자 이야기, 부자 또는 출세한 노총각 머슴 이야기, 파경한 노인이나 가난한 노총각의 결혼담, 지혜로 결혼한 노총각, 예쁜 아내를 얻은 바보 이야기, 처녀의 말 듣고 부자가 된 나무꾼 이야기 등의 민담도 있다.
순천 지역의 민요로는 노동요, 유희요, 의식요 등이 있다.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에 전승되는 모심기 노래[일명 상사소리], 순천시 서면 강청마을에서 전승되며, 부녀자들이 김매기의 힘겨움과 시집살의 고충 및 연정 등을 담은 밭매기 노래, 서면 학구리에 전승되며 잠도 못 자고 일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잠 노래, 순천시 주암면 운룡리나 서면 학구리에 전승되는 길쌈 노래 등의 노동요가 있다. 또, 놀이하면서 부르는 유희요로는 순천시 월등면 송천리에 전승되며 풍요를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노래 및 읍성 인근을 비롯해 순천시 인안동 대대마을·순천시 해룡면 해창마을·오천동 오림마을·순천시 낙안면·순천시 쌍암면 등의 줄다리기 노래가 있다. 주암면 운룡리에 전승되며 상량식 때 부르는 상량고사 소리 및 장례 때의 상여 소리 등 의식요가 있다.
순천 지역의 판소리는 소리 선생 박봉술(朴奉述)의 영향으로 동편제[송흥록의 법제에 따라 부르는 판소리의 한 유파] 법제를 따른다. 순천 출신 판소리 창자[노래나 창을 하는 사람]로는 오끗준, 오바독, 박초월, 「순천가(順天歌)」의 벽소 이영민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김순대, 박경자, 김수정 등에 의해 무가(巫歌)가 전승되고 있다.
[순천의 한문학]
순천 지역 한문학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개관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의 순천 지역 한문학으로는 승평판관을 지낸 장일(張鎰)[1207~1276]의 「과승평군(過昇平郡)」이 있다. 이는 순천[당시 승평]읍성 남문 문루 연자루(燕子樓)의 손억(孫億)·호호(好好) 및 박충좌(朴忠佐)·벽옥(碧玉)이란 관원과 기녀의 사랑 이야기 중 손억과 호호에 대한 내용이다. 순천 연자루 제영시의 시초가 된다.
조선 전기 순천 지역 한문학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연자루」와 순천부사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순천부(順天府)」가 있는데, 여기에는 소강남(小江南) 순천의 정체성이 들어있다. 이후 무오사화로 인해 1500년(연산군 6) 순천으로 이배(移配)[귀양살이하는 곳을 다른 곳으로 옮김]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영향으로, 순천지역민의 한문학적 토대가 형성되었다. 그 뒤로 허희인(許希仁)[1510~1572]의 한시 작품을 비롯해 매곡(梅谷) 배숙(裵璹)[1516~1589], 청사(靑莎) 정소(鄭沼)[1518~1572], 포당(圃堂) 정사익(鄭思翊)[1542~1588], 강호(江湖) 허엄(許淹)[1538~1610]의 이른바 승평사은(昇平四隱)이 문학 활동을 담당하였다. 1600년대에는 승평사은의 영향을 받은 최만갑, 정시관[1612~1687], 양명웅[1616~1674], 박시영[1630~1692], 황일구, 정우형[1620~1671], 정하[1648~?], 허빈[1623~1676] 등 이른바 승평팔문장(昇平八文章)이 시풍(詩風)을 주도하였다. 순천부사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은 1618년 순천 지역 최초 읍지인 『승평지(昇平誌)』를 편찬하면서 누정 제영시(題詠詩), 기문(記文), 상량문 등을 수록해 놓았고, 「환선정십영(喚仙亭十詠)」·「제화선팔수(題畫船八首)」 등을 남겨 당대까지 문학 작품 및 동천(東川)과 순천 풍광에 대한 정보를 담아 두었다.
조선 후기 순천 지역 한문학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주암에 거주하던 조현범(趙顯範)[1716~1790]이 1784년 『강남악부(江南樂府)』를 지었는데, 당대까지의 순천 지역 인물·역사·문화·전설·설화 등을 악부시의 형식으로 정리하여 지역사 사료(史料)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1801년(순조 1) 개성(開城)에서 순천으로 유배 온 한재렴(韓在濂)[1775~1818]은 「연자루절구십일수(燕子樓絶句十一首)」·「계정십절(溪亭十絶)」·환선정 주련 등 순천 풍광에 대해 노래하였다. 1800년대 후반부터 순천 유림은 누정 제영시 창작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였고, 또 남파(南坡) 김효찬(金孝燦), 운옹(云翁) 이병휘(李秉輝), 유당(酉堂) 윤종균(尹鍾均)[1861~1941]을 비롯해 김학모(金學模), 김학순(金學詢), 김순평(金順坪) 등은 난국사(蘭菊社)를 조직해 시사(詩社) 활동을 전개하였다. 게다가 순천 지역에는 조계산(曹溪山)을 중심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어, 선시(禪詩)와 같은 불교문학도 융성하였다. 순천 송광사와 순천 선암사 두 사찰과 관련해 유학자들도 많은 한시 작품을 남겼는데, 이는 불가(佛家) 공간에 대한 유가의 인식 및 당시 사찰에 대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요컨대, 순천 지역은 1500년 이후부터 유학과 문학의 토대가 형성되었으며, 이곳이 유배지였기 때문에 문학 담당층이 대개 순천부사를 비롯한 관원 및 유학적 지식을 갖춘 유배객이었다. 그래서 문학 갈래로 보면 관료 문학이나 유배 문학적인 면이 강하고, 작품은 대체로 누정 제영시가 많다. 한편, 순천 지역민이 문학을 담당한 경우로는 승평사은과 승평팔문장 및 『강남악부』의 저자 조현범이 있으며, 18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역 유림의 활발한 문학창작 활동이 전개되어 문집도 남기게 되었다.
[순천의 근현대 문학]
순천 지역의 현대문학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시작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순천 지역의 근대 교육이 늦게 시작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개항이 된 후에도 순천 지역민들이 여전히 이전 시대의 한시나 시조, 판소리 등의 문학을 향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이광수(李光洙), 김동인(金東仁), 김소월(金素月), 김억(金億) 등이 모두 서북지역[지금 평안도] 출신이었다는 점은 한국 근대문학의 전개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조선 후기 서양의 문명과 기독교가 전파되는 길목이 바로 서북 지역이었으므로, 서북 지역은 일찍부터 근대화를 이루었고, 근대 교육과 근대 문학도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순천 지역 최초의 근대 문인은 1920년대 10대의 나이로 서울로 유학하여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나온 임학수(林學洙)라고 할 수 있다. 임학수는 1930년대에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한다. 그런데 같은 전라도 지역인 목포의 근대 문인 활동을 살펴보면, 시조시인 조운과 희곡작가 김우진(金祐鎭)[「사의 찬가」를 불렀던 윤심덕(尹心悳)과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에서 동반 자살한 것으로 알려짐], 그리고 근대 여성작가의 선구자인 박화성(朴花城) 등이 이미 1920년대부터 조선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포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정에서 개항하면서 근대적 제도와 교육을 일찍 시행함으로써 순천보다 일찍 근대화를 이룬 반면, 순천은 봉건적인 생산 양식, 지주와 소작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농경문화를 늦게까지 유지하였고, 근대화의 출발이 늦었으며, 근대 문학의 출발 또한 다른 지역보다 늦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순천 지역의 근·현대 문학이 다른 지역보다 질적으로 열등하거나 수준이 낮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출발은 늦었지만 조정래, 김승옥, 서정인, 정채봉 등은 1960년대 이후 한글세대 문인들을 대표함과 동시에 한국 현대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마련한 대표적인 순천 출신의 문인들이었다.
순천 지역의 근대문학의 출발이 되었던 인물인 임학수는 시인과 평론가, 영문학자로 활동했다. 임학수는 1931년 『동아일보』에 시 「우울(憂鬱)」과 「여름의 일순(一瞬)」을 발표하며 등단하여 낭만주의 경향의 시와 친일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임학수 이후 순천 지역의 현대문학은 1960년대 이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순천고등학교를 나온 소설가 김승옥의 등장은 순천의 현대문학계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문학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리는 김승옥의 문체, 즉 새로운 세대들의 감성을 반영한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세밀한 묘사의 문체는 이전의 한국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순천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창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김승옥의 대표작 『무진기행』은 한국 소설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면서, 동시에 순천 지역의 정서와 내밀한 풍경을 소설화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순천고등학교 출신의 서정인 또한 기존 한국 소설사에서는 낯선 서사 문법과 정신을 보여주었다. 서정인의 소설은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서사 전개를 진행시켜 가는 기존의 사실주의 소설의 계열과 다르게 사건의 인과율을 무시하고 작중 인물들의 무질서한 내면과 말장난스러운 대화를 서사의 핵심으로 삼았다. 특히, 서정인의 대표작 「무자년의 가을 사흘」은 서정인이 어린 시절 직접 체험한 여수 순천10.19사건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로, 역사의 비극성과 그로 인한 민중들의 상처를 형상화한 명작이다.
순천시 해룡면 출신의 정채봉도 한국동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가이다. 『오세암』, 『물에서 나온 새』, 『초승달과 밤배』 등을 창작한 정채봉은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를 잡지 『샘터』에 연재하여 한국에서 ‘성인 동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정채봉은 서정적이면서도 간결한 문장을 통해 우리들의 본래적인 삶, 동심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기여하였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도 순천 출신의 소설가이다. 식민지 시기 승려였던 시조시인 조종현의 아들로 선암사에서 태어난 조정래는 일찍이 부모를 따라 벌교를 거쳐 서울에서 성장하였지만, 반제 반봉건의 토대를 이루었던 남도의 정신을 대하장편소설 『태백산맥』으로 형상화하였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일제에 의해 내면화된 식민담론의 관성과 미군정의 신식민적 기획에 대항하는 민중들에 의한 탈식민 혁명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지 못함으로써 여수 순천10.19사건이나 6.25전쟁과 같은 폭력적이고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되었음을 적확하게 지적해내고 있다.
이 같은 순천 지역 현대문학의 흐름은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후학들을 길러냈던 소설가 이청준, 시인 송수권·곽재구와 같은 이들에 의해 더욱 계승되어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열심히 창작 활동을 하면서 『순천문학』과 『사람의 깊이』 등의 문예 잡지를 매년 발간해내고 있는 순천문인협회와 순천작가회의 회원들의 숨은 노력도 순천의 현대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천 지역의 문학은 앞으로 기존의 관념과 감성을 깨뜨리고 새로운 문학의 판과 틀을 구성해낼 수 있는 새로운 문인들, 예술가들이 출현해야 더욱 발전적인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순천 지역의 문학은 장르의 초월 혹은 장르의 습합, 세계관과 미의식의 비약적 전환과 발전을 이루어낼 때 비로소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