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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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安鄕校 |
영어공식명칭 | Naga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영어음역 | Naga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영어공식명칭 | Naga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교촌길 59[교촌리 222] |
시대 | 조선/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립 교욱기관
[개설]
향교는 유학자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향하고 있다.
[위치]
낙안향교는 순천 낙안읍성에서 남쪽으로 약 800m 위치에 있다.
[변천]
낙안향교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지(樂安邑誌)』에 따르면, 1658년(효종 9) 낙안읍성 동쪽 농암동에서 현 위치인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로 옮겼다. 부속 건물에는 명륜당, 동·서재, 내삼문, 동·서무, 대성전, 양사재(養士齋)·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1666년(현종 7) 명륜당을, 1759년(영조 35) 외삼문, 1777년(정조 1) 양사재를 건립했다. 1802년(순조 2) 명륜당을 수리하였다. 그러나 1908년 낙안군이 폐군(廢郡)되면서 순천과 보성에 분속되자 1909년 위패를 땅에 묻고 훼철되고 말았다. 1916년 다시 향중 사림의 노력으로 위패를 다시 봉안하였고, 1921년 동무와 서무를 다시 지어 18선정을 모셨다. 1960년에 대성전, 1965년에 동재, 1966년에 동재, 1970년 대성전, 1976년 명륜당, 1984년 서재를 수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낙안향교는 명륜당, 동재·서재, 내삼문, 동무·서무, 대성전 순으로 축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앞에는 교육공간, 뒤에는 제사공간]의 경사지 건축이다. 좌향은 남서향이며, 동재와 서재, 동무와 서무는 좌우대칭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서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덤벙주춧돌[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가구(架構)[기둥이나 공포 위에 얹혀 내부공간을 형성하는 구조나 구조물의 총칭]는 2고주(高柱) 5량가(梁架)이며 공포는 초익공식이다. 지붕은 겹처마로 바람막이판이 있는 맞배지붕이다. 동무와 서무는 앞면 2칸, 옆면 1칸으로 초익공식 공포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에 바람막이판이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좌우 툇간은 방으로 되어 있으나 협칸과 중앙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가구는 5량으로 기둥은 덤벙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초익공식이다. 지붕은 겹처마의 맞배지붕에 바람막이 판이 있다. 동재는 앞면 5칸, 옆면 1칸 전퇴로 좌측 툇간은 누마루 형식이며 가운데 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또 서재는 앞면 3칸, 옆면 1칸 전퇴로 동재와 같이 앞면에 툇마루가 있다. 동재와 서재의 기둥은 방주(方柱)로 자연석 덤벙주춧돌 위에 세워져 있다.
[현황]
낙안향교에는 「낙안향교유림안」[1933], 「낙안향교중봉실기」[1927], 「낙안향교집강」[1957], 「낙안향교유도회안」[1957] 등이 소장되어 있다. 1980년 명륜당 중건과 관련한 현판이 몇 종 있다. 입구 길가에 22기의 비군(碑群)이 있다. 명륜당 우측에는 수령 4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1658년(효종 9) 이건 당시에 심은 것이라 한다. 낙안향교는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낙안향교는 조선시대의 향교와 교육제도를 알 수 있는 곳으로 순천의 향촌사회사에 있어 중요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