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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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亨注 |
영어공식명칭 | Kim Hyeong-ju |
영어음역 | Kim Hyeong-ju |
영어공식명칭 | Kim Hyeong-ju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영기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 김형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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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5월 - 김형주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6월 17일 - 김형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교수형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4월 2일 - 김형주 대구공소원에서 종신징역형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형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김형주 거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 |
활동지 | 김형주 활동지 - 전라북도 순창군 |
활동지 | 김형주 활동지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순천 출신으로 순창 지역 양경학 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김형주(金亨注)[1886~?]는 전라도 순천군 주암면(住岩面) 광천(廣川)[현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에서 살면서 상업에 종사하였다.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김형주는 순천 지역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목격하였다. 20대의 나이였던 1909년을 전후한 시기에 고향 순천을 떠나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에서 활동 중인 순창 출신의 양경학(梁景學)[1884~1910] 의병부대에 투신하였다. 김형주가 전라북도의 양경학 의병부대에 참여하는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아마도 의병활동으로 인한 집안과 가족들의 피해를 방지할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3월 이후 양경학 의병장의 지휘를 받아 전라북도 순창군과 태인군(泰仁郡)[현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김형주는 동지 5~8명과 함께 군자금을 징수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순창군에서 몰래 활동하던 일본군 밀정 한경서(韓京西)를 체포하여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1909년 5월경 체포되어 1909년 6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4월 2일 대구공소원에서 종신징역형이 선고되었고, 이어 1910년 5월 12일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김형주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