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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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東植 |
영어공식명칭 | Choi Dong-sik |
영어음역 | Choi Dong-sik |
영어공식명칭 | Choi Dong-sik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재성 |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오적암살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동식(崔東植)[1850~?]은 순천에서 태어나 사헌부감찰을 지낸 후 1904년 6월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여 황무지 개척권의 부당함을 알리는 통문을 돌렸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 직후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조약 체결에 찬동한 박제순(朴齊純)[1858~1916]·이지용(李址鎔)[1870~1928]·이근택(李根澤)[1865~1919]·이완용(李完用)[1858~1926]·권중현(權重顯)[1854~1934] 등 5대신[을사오적]의 처형을 주장하는 고발장을 제출하였다가 4개월간 투옥되었다. 1906년 대한자강회 간사원이 되었고, 1908년 호남학회의 학감(學監)[학교장의 지휘 아래 학무(學務) 및 학생을 감독하던 직위]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1907년 나철(羅喆)[1863~1916]·오기호(吳基鎬)[1865~1916] 등과 함께 오적암살대를 조직하였다. 거사가 실패한 후 동지들이 차례로 잡히자 무고한 사람에게 화가 미치지 않게 하려고 자현장(自現狀)[자기의 거사 사실을 스스로 밝힌 문서장]을 작성하여 나철·오기호 등과 같이 평리원(平理院)[1899년 5월부터 1907년 12월까지 존치되었던 최고법원]에 자수하였다. 평리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5대신은 그냥 두고 이를 처단하려고 하였던 사람에게 중죄를 가하려는 것은 모순된 일이라고 진술하여 유형 10년을 선고받아 진도(珍島)로 유배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동식은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