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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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成俊 |
영어공식명칭 | Yu Seong-jun |
영어음역 | Yu Seong-jun |
영어공식명칭 | Yu Seong-jun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경엽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 유성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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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44년 - 유성준 사망 |
성격 | 판소리 명창 |
성별 | 남 |
[정의]
근대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개설]
유성준(劉成俊)[1873~1944]은 구례 지역과 그 인근을 중심으로 활동한 동편제 소리꾼이다.
[가계]
유성준은 대대로 음악을 해온 세습 예인 집안 출신으로서, 농악대 상쇠 유경학의 아들이자, 판소리 명창 김정문(金正文)[1887~1935]의 외삼촌이며 판소리 명창 김영운(金永雲)[1917~1972]의 외할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유성준은 어린 시절 외삼촌[혹은 처삼촌]인 장자백(張子伯)[?~1907]에게 소리를 배운 뒤, 구례[현 전라남도 구례군]의 송우룡(宋雨龍) 문하에서 학습하고 일가를 이루었다. 이후 정춘풍(鄭春風)과 김세종(金世宗)의 지침을 받아 판소리 이론에도 밝았다. 유성준은 어린 시절부터 서울의 문희연이나 전주대사습에서 소리를 했으며, 30대에는 협률사, 원각사 무대에서 공연하고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유성준은 근대식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전래의 소리를 지키는 일을 과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순천, 하동, 진주 지역 등 지방에서 소리를 가르치는 일로 여생을 보냈다.
유성준 명창이 순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1936년 무렵이다. 유성준은 당시 보성군수를 지낸 ‘성군수’의 북선생으로 있었는데, 유성준의 명성을 듣고 소리를 배우려는 제자들이 찾아오곤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연수(金演洙)[1907~1974]다. 김연수는 20대 후반에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웠다.
[저술 및 작품]
유성준 바디 「수궁가」와 「적벽가」는 동편제의 내력 있는 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유성준의 소리는 임방울(林芳蔚)[1904~1961], 김연수, 정광수(丁珖秀)[1909~2003], 강도근(姜道根)[1918~1996], 박동진(朴東鎭)[1916~2003] 등을 통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