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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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定慧寺 |
영어공식명칭 | Jeonghyesa Temple |
영어음역 | Jeonghye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Jeonghyesa Temple |
이칭/별칭 | 고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청소리 716]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이종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272년 - 정혜사 충지 중창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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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17년 - 정혜사 대웅전 신욱 중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25년 - 정혜사 대웅전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54년 - 정혜사 대웅전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2년 - 정혜사 대웅전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1월 30일 - 순천 정혜사 대웅전 보물 제804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순천 정혜사 대웅전 보물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 정혜사 명부전 신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8년 - 정혜사 선원 신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 정혜사 설선당 보수 |
최초 건립지 | 정혜사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청소리 716] |
현 소재지 | 정혜사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청소리 716] |
성격 | 사찰 |
창건자 | 보조국사 체징|혜소국사(慧炤國師) 담진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청소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 소속 사찰.
[고려시대의 위상]
신라시대 창건된 정혜사는 고려시대 혜소국사(慧炤國師) 담진과 원감국사 충지가 거처하였던 명찰이었다. 1188년(명종 18)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대구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하여 수행하다가 현재 순천 송광사로 옮기면서 조정에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인근 계족산에 정혜사라는 사찰이 있으므로 명칭에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수선결사(修禪結社)’로 이름을 고쳐 하사하였다. 이처럼 당시 정혜사의 위상은 조정에서도 중시하였을 정도로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정혜사의 명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는데, 문헌 기록에 따라 통일신라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체징(體澄)[804~880]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과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다.
1854년(철종 5)에 작성된 「정혜사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정혜사는 신라시대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한 보조국사 체징이 창건하였고, 동리산문(桐裏山門)을 개창한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785~861]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시대 원감국사 충지가 찬술한 「혜소국사제문(慧炤國師祭文)」에서는 고려 전기 혜소국사(慧炤國師) 담진(曇眞)[11세기 후반~12세기 초]이 산문(山門)을 열었다고 하였다.
1272년(원종 13)부터 원감국사 충지가 정혜사에 거처하며 사찰을 크게 중창하고 말년까지 수행하였다. 원감국사 충지는 19세의 젊은 나이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촉망받는 유학자였으나 2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1286년(충렬왕 12)에 수선사(修禪社) 제6세 법주(法主)[법회의 주관자]가 되었다.
이처럼 신라시대 보조국사 체징, 고려시대 혜소국사(慧炤國師) 담진과 원감국사 충지 등 세 명의 국사가 머물렀던 정혜사는 조선 전기까지 순천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정혜사에 “부처의 치사리[치아 사리]가 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조선 후기 정혜사는 인근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1597년(선조 30)에 일어난 정유재란의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소실되었다. 이후 1617년(광해군 9)에 신욱(信旭)이 현존하는 순천 정혜사 대웅전[보물 제804호]을 비롯하여 여러 요사채[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지어진 건물]를 지어 가람을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대웅전 불상을 새로 조성하였다. 이에 1729년(영조 3)에 편찬된 『신증승평지(新增昇平志)』에서는 “옛날에는 아주 큰 절이었다. 임진년과 정유년의 왜란 이후에 다시 절을 중창하였는데 그 절에 있는 승려는 아주 적다.”라고 기록하였다. 순천 정혜사 대웅전은 1854년(철종 5), 1940년대, 1962년에 중수되었다. 1986년에 명부전을, 1988년에 선원을 신축하였다. 1998년에 설선당을 보수하였다. 이후 일주문, 보제루, 요사채, 공양간 등이 새로 건립되었다.
[관련 문화재]
정혜사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옛 절’이라는 의미의 ‘고사’라고 불리어 왔다. 이는 순천 정혜사 대웅전 앞 돌계단 소맷돌에 ‘고사(古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물로 지정된 순천 정혜사 대웅전은 1617년에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현판은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아버지로서 순조 대에 최고의 실권자였던 풍고거사(楓皐居士) 김조순(金祖淳)[1765~1832]이 썼다. 김조순이 썼다. 김조순이 쓴 순천 정혜사 대웅전의 현판은 순천 선암사에도 남아 있다. 순천 정혜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상은 1725년(영조 원년)에 조성되었다. 정혜사에 보관된 목조대불좌에 “옹정삼년을사오월일 불상삼존조성야 화사관인 별좌관흠 화구순민[雍正三年乙巳五月日 佛像三尊造成也 化士貫人 別坐貫欽 畵□順敏]”이란 묵서(墨書)가 적혀 있어 목조삼존불상의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