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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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林亭 |
영어공식명칭 | Orimjeong |
영어음역 | Orimjeong |
영어공식명칭 | Orimjeong |
이칭/별칭 | 오림사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오천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진 |
건립 시기/일시 | 1550년 - 오림정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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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9년 - 오림정 신철휴 외 6인 중수 |
현 소재지 | 오림정 - 전라남도 순천시 오천동 |
원소재지 | 오림정 - 전라남도 순천시 오천동 |
성격 | 누정|정자 |
양식 | 단층의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신희찬 |
관리자 | 신희찬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오천동 오림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건립 경위]
신윤보(申潤輔)[1483~1558]가 을사사화 이후 벼슬을 버리고 안동(雁洞), 즉 현 순천시 오천동 해룡산[일명 망월산] 아래로 귀향하여 동천을 마주하는 곳에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유자나무·동백나무[山茶] 5종을 심고 은거와 청절(淸節)을 지향하기 위해 지은 누정이다. 신윤보의 자는 비경(斐卿), 호는 오림(五林),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부친은 신질(申礩)이고 모친은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1518년(중종 13) 문과에 급제하였다. 제용감참봉·보은현감·해주판관·원주목사·연안부사·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위치]
[변천]
신윤보 사후 오림정 관련 기록은 1784년 완성한 조현범(趙顯範)[1716~1790]의 『강남악부(江南樂府)』「오림사(五林祠)」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로 보아, 이 무렵 사당의 기능을 하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중수는 원래 터에서 뒤쪽으로 더 들어가게 되는데 1918년 8월 하순에 상량하였고, 1919년 중수를 완료하였다. 당시 신영식을 비롯해 신철휴·신영휴·신학휴·신봉휴·신현구·신진구·신양휴 등이 참여하였다. ‘오림정’ 현판 외에 만락재(晩樂齋)도 있다.
[형태]
오림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재실형이다.
[현황]
후손 신희찬이 오림정을 관리하고 있으며, 재실로 쓰고 있다. 오림정 앞 계단 아래 왼편에는 신윤보가 서당을 지었다는 터가 있다.
[의의와 평가]
오림정은 순천 지역 유림에게 청절의 유풍을 진작시키고 현인을 사모하는 공간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