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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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于珍也縣 |
영어음역 | Ujinyahyeon |
영어의미역 | Ujinyahyeon Administrative District |
이칭/별칭 | 고우이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집필자 | 심현용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고구려 시대의 지방통치구역.
[개설]
울진 지역의 통일신라 이전의 지명이 우진야(于珍也)이다. 이는 『삼국사기』[1145]를 비롯하여 『고려사』[1451], 『세종실록지리지』[1432],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지지』[1864]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고우이(古亏伊)라고도 불렀다 하며, 또 『대동지지』에는 어진(御珍)으로도 불렸다 한다.
울진 지역은 삼국시대에 우진야·고우이·어진 등 다양하게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 한자식으로 고치는데, 이때 울진 지역의 우진야라는 지명을 지금의 울진으로 변경하였다. 그런데 금석문에 따르면, 524년에 세워진 울진봉평신라비에는 거벌모라·남미지촌·아대혜촌·갈시조촌 등으로, 561년에 세워진 창녕진흥왕척경비에는 우추(于推)로 나오고 있으며, 우진야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있다.
울진 지역에는 초기 국가시대에 진한 12국 중의 하나인 우중국 또는 우유국이라는 소국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앞에서 거론한 우추와 우진야라는 지명이 음운 상에서 우중국 또는 우유국과 서로 통한다. 그러므로 우추·우진야·우중국·우유국이라는 지명은 울진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권32 잡지1 제사편에 “소사에는 우진야군을 악발 또는 발악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권35 잡지4 지리2에 “울진군은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울진으로 고쳤는데 당시에도 그대로 하였다. 영현(領縣)은 하나이다. 해곡현[또는 해서현]은 본래 고구려 파단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해곡으로 고쳤으나 당시에는 잘 알 수 없다고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권37 잡지6 지리4 고구려 하슬라주편에 “우진야군 파차현[또는 파풍]”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고려사』권58 지제12 지리3 동계 강릉부 울진현에 “ 울진현은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 또는 고우이군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군으로 삼았다. 고려는 강등시켜 현으로 하고 현령을 두었다. 울릉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편에 “울진현은 지현사가 1인이다.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인데 신라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군으로 하였다. 고려는 울진현이라 일컬었는데 본조도 그대로 따랐다. 고을 사람들이 세속말로 전하기를 옛 이름은 반이군 또는 선사군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45 강원도 울진현편에 “울진현은 본래는 고구려 우진야현 또는 고우이군이라고도 하였다. 신라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군으로 하였다. 고려는 강등시켜 현으로 하고 현령을 두었는데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권16에 강원도 울진편에 “본래 우진야[어진이라고도 하였고 고우이라고도 하였다]이다. 신라 경덕왕 16년에 울진군으로 고치고 명주에 속하게 하였다. 영현은 해곡이다. 고려 현종이 현령으로 강등하였고 본조도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이 있다.
[내용]
울진 지역은 삼한시대 경주 사로국[신라] 중심의 진한연맹체에 편입되어 있다가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에 경주 사로국에 통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계속해서 사로국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헌 기록에서 울진군이 원래 고구려의 우진야현(于珍也縣), 즉 신라 땅이 아니라 본래 고구려의 땅이라고 하였다.
고구려가 468년(장수왕 56) 삼척 지방을 장악하고 481년(장수왕 69)에 미질부[지금의 흥해]까지 남하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보아, 이때 쯤 중간에 위치한 울진이 잠시 고구려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때 고구려는 짧은 시기 동안 울진을 복속하고 우진야현으로 삼았기 때문에 울진군이 원래 고구려의 우진야현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천]
고구려 장수왕의 울진 지역 지배 이후, 505년(지증왕 6)에 처음으로 삼척에 주(州)를 설치하고 군주를 두는 것으로 보아 신라가 5세기 말~6세기 초에 동해안의 빼앗긴 땅을 회복하여 다시 신라의 영토로 복구하였다. 또 울진봉평신라비에 나오는 실지군주가 거벌모라도사와 실지도사를 통할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주치(州治)가 505년(지증왕 6)에는 실직주(悉直州)[지금의 삼척]로,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현 강릉]로 이동되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봉평신라비 단계에 와서는 다시 실직으로 이동되어 있다. 이는 거벌모라였던 울진 지역이 실직주에 편입되어 있다가 하슬라로 주치가 이동되면서 하슬라군주의 통제를 받았으며, 봉평신라비 단계에서는 다시 실직군주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로 분할하였는데, 이때 울진과 평해 지역은 명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주·군현 명칭을 개정할 때 우진야[우진야현]에서 울진[울진군]으로 개칭하고 영현으로는 해곡현(海曲縣)을 두고 그대로 명주의 관할 하에 두었다.